보통 마음공부의 방향을 이야기할 때 헌신의 길과 믿음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믿음은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서 자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만, 다른 하나 인 헌신의 길은 한번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 같아 간단히 말씀드려봅니다. 헌신의 길이라고 해서 종교나 믿음에 '나'를 헌신하는 그런 차원으로 해석하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쉬운 표현으로 '내맡김'이라고 이해해 보죠. '내려놓음'도 좋습니다.
내맡긴다고 하면 당연히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내맡기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보통은 내맡김의 주체를 '나'라고 당연시하고 '나' 보다는 주로 '무엇'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요, 사실 핵심은 내맡김의 주체인 '나'입니다.
내맡기라고 하니 '나'가 내맡겨야겠다... 는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의도를 일으켜서 조작을 하는 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실체로 인식하면서, 이 몸-마음을 나라고 동일시한 상태에서는 어떤 행위도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의도를 일으켜도 그 의도를 일으키는 '나'의 본질을 알면 그대로 내맡김이 돼버립니다. 그러나 의도를 일으키지 않아도 그것을 '나'가 하고 있다는 착각이 있으면 내맡김이 아닌 게 됩니다. 음... 말이 조금 어려운가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글을 보강해서 다시 쉽게 쓰겠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보시죠. 여기서 내맡김은, 그냥 영화를 감상하는 겁니다. 다만 그 영상의 주인공이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것이 공포영화이건 재난 영화이건 괴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심리에 동화되어 영화를 즐기긴 하지만 그것을 진짜 '나'라고 착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삶에 있어서는 지나친 열혈관객 모드가 돼서 영화 속 주인공으로 열연하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오스카에서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럴때 내맡기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아주 골치가 아픈 일이 벌어집니다.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관객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영화는 없으니까요. 그저 만들어진 시나리오대로 이야기가 흘러갈 뿐인 거죠. 이런 열혈관객 모드의 착각이 없으면 그야말로 온전한 영화감상이 되고 그 자체가 이미 내맡김이 되고 유희가 됩니다. 명확하게 알면 내맡기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명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의 삶이라는 영화가 '나'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화에 비유를 하니, 나의 몸-마음 밖의 나를 둘러싼 상황만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 영화는 몸-마음을 통틀어 영화예요. 그래서 의도대로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고, 의도대로 심장이 뛰지 않았던 겁니다. 피를 돌려 몸을 정화하고,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배가 고프고, 밥을 먹고, 피곤하고, 졸렵고, 심장 마비가 올 때도 있고, 배탈이 나기도 하고, 기쁜 감정 슬픈 감정, 이런 마음 저런 마음, 모두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겁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내가 삶을 선택하고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 역시 착각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영화에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라는 주체성과 존재감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나'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의 느낌, 인식의 느낌 역시 영화의 한 부분인 것이죠. 착각 자체도 영화의 한 부분인 겁니다.
자, 상황이 이러하니 어디 내맡기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내맡겨도, 혹은 내맡기지 않아도 모든 것은 내맡김 그대로입니다. 착각해도 혹은 착각하지 않아도 그대로 내맡김이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모든 경험을 이미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허용하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