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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Feb 12. 2022

유용성과 범주의 오해

우리는 꿈속에 등장하는 사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과를 가지고 저글링을 할 수도 있고 주스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아주 유용하게. 누구에게 유용한가? 꿈속의 나에게 유용하다. 


그런데 이런 유용성이 그 사과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꿈속의 사과가 꿈속의 '나'에게 유용하다고 해서 그 사과가 실재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범주가 다르지만 유용성을 실재성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눈앞의 사과라는 게 존재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질문은 한결같다. 


"이렇게 만질 수도 있고 먹을 수 있는데 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하세요??"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인식할 수 있다는 것, 물리적 패턴을 예측할 수 있어서 유용하게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존재의 증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무언가 유용한 것을 존재성의 근거로 삼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사과를 맛있게 먹는 다고 해서 그 사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나'로 동일시되는 순간.... 나에게 유용한 것이 나에게 실재적인 것으로 둔갑해버린다.


그래서 이 특이한 세상을 하나씩 따져가며 살펴보는 것이다. 왜 어제의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지... 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왜 홀로 독립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지... 왜 관점에 따라서 모든 게 다르게 보이는지... 나는 누구인지...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신화적 세계관을 벗어난 이성적 인간의 철학 행위... 그 다음 단계의 필연적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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