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nXn4lOxvtEE
과학의 영역이 이제는 실상을 밝히는데 부족함이 없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손에 쥐고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해를 못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이해를 못 할 뿐이다. 이해를 못 한다고 해서 목마를 때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던 못하던 세상은 돌아간다. 세상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원시시대에도 세상은 알아서 돌아갔다.
우리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우리들이 임의로 '그렇다고 대충 약속한' 개념에 기대어 있다. 그런 개념 위에 세우는 탑 쌓기는 그 중간 과정이 마치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양자역학'과 같은 결론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해는 개념의 세계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개념, 생각)에 견주어서 맞으면 옳다 하고 맞지 않으면 틀렸다 한다. 전반적으로 자신의 개념이라는 퍼즐에 맞으면 이해했다고 안도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정말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우리가 이해했다고 확신하는 모든 것은 그저 '패턴'에 익숙해졌다는 의미일 뿐이다.
양자역학과 같이 기존의 이해와 맞지 않는 무엇을 마주할 때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것은 무작정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해한다'라는 것 자체다.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는가? 드러난 현상을 이해하려는데 도무지 말이 안 되고 이해가 안 간다면 한 번쯤은 돌아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이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 툴로 사용하고 있는 생각. 개념이 진정 무엇인지 돌아볼 때가 이미 반나절은 지났다.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증명할 필요가 없는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를 '공리'라고 한다. 일종의 초석인 셈이다. 그런데 그 공리를 바탕으로 바벨탑을 세웠는데 정작 그 공리라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실을 알았다고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아인슈타인처럼 화를 내야 할까?
단적으로 기하학의 초석을 이루는 점의 정의를 한 번 보자.
점(點)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을 말한다. 점은 유한직선(有限直線)의 일단(一端)이며, 선의 교차에 의하여 생긴다. 점은 선, 면, 도형 등의 기초가 된다.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을 말한다.
이 위에 기하학이 서있다.^^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참 재미있다. 그 스스로 상대성이론을 정립했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이러니를 스스로 그런 줄도 모르고 소문내고 다닌 셈이다. 만일 그가 상대성 이론이 가리키는 방향을 정확히 봤다면 양자역학을 오히려 반가워했을지도 모른다.
저 하늘의 '달'이 내가 볼 때는 있고 내가 보지 않으면 없는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보기 전까지는 확률의 상태로만 존재하고 있다가 내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물질로써 존재한다는 이 황당한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정말 그런가?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를 생각하면 이미 도루묵이다.
'있다'는 '없다'에 의존해서만 드러나는 개념이다.
이 위에 양자역학이 서있다.^^
우리가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상이기 때문이다. 실상을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구름을 잡으려는 것처럼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다. 단 하나의 잘못된 믿음만 내려놓는 다면 가능하다. 바로 고정적인 무엇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세상에는 개념으로 붙들어 둘 수 있는 고정적인 존재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파동이란 개념으로 가두려 해도 입자라는 개념으로 가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뿐이다.
우리가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정확히 같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