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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May 07. 2023

삶에 이유가 없다면?

죽음을 택하지 않을 이유 찾기

어머니의 오랜 지인 한분은 행복한 삶을 위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다니셨다. 젊었을 때는 조직 폭력배 행동대장을 하시던 분이셨는데, 어느 순간 삶의 방향을 바꿔 행복 전도사로서의 길을 걸으셨다. 어느 겨울날 신발 끊을 묶으시다 허무하게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는 정말 열정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의 중요성을 찬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다. 그러나 그 겨울 거동이 어려워진 직후부터 각종 합병증으로 인한 고통을 받으시더니 급기야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 그 후 육체적 정신적 통증에 시달리시다가 결국은 자신을 돌보던 아내와 함께 어느 먼 시골마을 모텔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에서 고통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그 안타까운 이야기가 제법 충격이었다. 가까운 지인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독립투사처럼 용맹하게 삶의 행복과 긍정 마인드를 설파하던 그분 조차 육체의 고통 앞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다. 저렇게 삶에 대해 확신하던 분 마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과연 나는 이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젊은 시절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던 때 항상 이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아마도 이 말을 했던 누군가는 적어도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잘 찾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굳이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니, 아름다운 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이진 않다. 자신만의 이유는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 그야말로 자신만의 믿음과 가치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서라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세상의 논리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왜? 포기란 것은 내키지 않으니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어차피 하던 거니까?  먹지도 않을 라면을 열심히 끓이는 행위는 내가 알기론 예술 밖에는 없다.



어차피 언제 지구가 멸망할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우리는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할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인생이 남았는지 모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내일 지구가 망할 줄 알면서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게 사과나무를 심다가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남은 인생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누군가에게 우리는 무슨 말로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은 힘을 잃어버린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혹은 자식이든. 간혹 그것을 위해 오히려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죽음 이후에 그것이 의미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을 초월한 개념을 발명하거나 혹은 외면하는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 간다. 죽음 이후의 삶이나 윤회 혹은 우리의 다음 세대의 번영이라는 주제로 바통을 넘기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이야기다. 핵심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에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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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겐 '의미'라는 것이 필요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왜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야만 하고 왜 선한 일을 해야 하며 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을 찾아야만 하는가?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것이 정말 의미 없는 일일까? 만일 삶에 있어서 의미라는 것을 찾지 않고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간다면 그것은 정말 의미 없는 일일까?


정작 세상 사람들 대다수는 거창한 의미 없이 살다 갔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대충 봐도 인간의 삶은 방식은 '의미의 부재'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다. 몇몇 영웅적이거나 의미 있는 삶으로 칭송되는 사람의 수는 정말 보잘것없다. 심지어는 그 의미조차 삶을 살아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도 의미의 부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행복해지려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미의 부재를 인정하고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행복이라고 부를만한 것의 구조를 알게 된다. 삶의 의미, 세상의 의미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내려놓으면 그때 진짜가 나타난다. 이것은 해석되거나 만들어지는 이야기 속의 의미가 아니라 당신의 존재 자체다. 이원적인 생각 속에서 만들어지는 의미가 아닌 인식의 전환으로 인한 세계관의 재편을 경험한다.


인간의 삶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우리가 생각으로 짜 맞춘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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