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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Aug 14. 2023

인식과 존재

깨어남을 다르게 표현하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니? 그럼 지금은 있는 그대로 못 보고 있다는 말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우선 그렇다.  


우리는 보통 사과를 사과로 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는 것'과 '생각'은 하나에서 일어나므로 다르지 않고 더더욱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그러나 생각과 보는 것을 구분하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인식되는 대상 자체에는 존재라는 의미가 없다. 존재, 즉 무언가가 ‘있다’라는 개념은 그저 그림에 생각이 더해진 결과다. 예를 들면 영화의 화면  위에 등장하는 대상들처럼 그저 계속 변하는 얼룩진 그림일 뿐이지만 그것을 패턴화 하여 인식하고 유추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그것을 존재로 세우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야기를 만드는 건 관객이지 대상 자체가 아니다. 스크린에 그려지는 그림 자체에는 이야기가 없다. 존재라는 개념이 있을 때만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인식과 존재는 연관이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인식되는 것들은 존재가 아니여야 한다. 인식의 구조 자체가 존재성을 스스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연기법은 이런 조건적 구조의 허구성을 설명한다.


인식된다고 해서 존재한다고 착각하면 불교에서는 망상이라고 한다. 사과라는 것이 보이고 만져진다고 그것을 존재로 여기면 망상이다. 망상이라고 하니 뭔가 쓸데없는 생각 정도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존재의 세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모두 망상인 것이다. 그러나 망상과 망상 아님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는 모든 생각이 망상이다. 심지어는 진리를 설하는 그 어떤 말도 망상이다. 지금 이 말도 물론 예외 없이 망상이다. 집착할 것이 못된다는 말이다. 실체로 볼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반대로 이 세상이 모두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그 또한 양극단의 다른 이라 여전히 이원성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망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있다 없다는 생각 없이 내용과 이야기에 빠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우선은 지금 내가 인식하는 대상들이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이상한 소리를 마주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우선이다. 


인식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는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식되므로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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