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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Dec 24. 2023

점은 크기가 없어서

브런치북 '꼬리찾기' 중에서..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다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크기가 없이 위치만 존재한다니 세상에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사실 점이란 건 생각 속에만 존재가 가능할 뿐 실제로 세상에 등장할 수는 없다. 아무리 미세한 점을 종이에 찍더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면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점이라는 개념 위에 선이 만들어지고 선이라는 개념 위에 면이 만들어지고 면이라는 개념 위에 정육면체가 탄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점이란 녀석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자산인 ‘위치’라는 것은 또 뭔가. 과연 어디를 기준으로 한 위치인 걸까? 적어도 그리니치 천문대나 적도와 같은 이 세상의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가상의 것을 세상에 세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테니 그 위치 역시 개념의 위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겠어?
크기가 없는 것에서
크기가 있는 것이 나왔다는걸?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자신의 저서 ‘원론’에 이러한 공리를 정의했다. 이런 공리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살아가는 기본 환경이 된다. 공리란 수학, 논리학, 혹은 다른 형식적 체계에서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사용되는 명제나 진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리는 증명되지 않으며, 대신 직관적으로 명백하거나 합의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명제로 간주된다. 그런데 나는 이 공리에 순순히 합의한 적이 없다. 당신은 어떤가?

 
 그 시작의 임의성이 그 위에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유클리드의 마음이 바로 우리의 삶과 같다. 어떻게 시작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살아가는 인생을 위해 시작과 끝을 정한다. 유클리드는 공리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과학과 종교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과학에서 빅뱅을 그 시작으로 맞이하고 누군가는 신을 그 시작으로 맞이했다. 그렇게 각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공리는 그 쓸모가 다수에게 용인되면 발전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대단한 재주를 부릴 수 있다고 해도 그 본질은 우리의 생각 속 개념이라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론 물리학에서 다루는 수학의 세계는 사실 매우 경이롭다. 관찰되지도 않는 것을 미리 발견하기도 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힘을 공식으로 정리해 기술 개발에 활용하기도 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거대강입자충돌기(LHC)를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 지하 175m 깊이에 내부 공간에 27km 크기로 만들어 입자 충돌 실험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통해서 물질의 기본 구조에서부터 우주의 시작까지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뛰어넘는 연구 진행 한다. 인간의 이성이 이렇게까지 이원적으로 고도화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 또한 자연이 꽃을 피워내듯 인간에게 있어서 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우리의 그런 이원적 재주는 사실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이름 짓기로부터 시작된 분리의 여정은 숫자라는 마법의 시간을 거치고 이원적 성취의 놀라움에 압도당하는 사이 결국 양자역학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로만 보면 인간은 이원적 환상에서 벗어나기 직전인 것 같지만,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데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이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만큼 혁명적이고, 우리의 인식의 오류를 수정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인식 자체의 변화를 주지 못하고 과거의 인식 구조를 유지한 체 문 밖에서만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스스로를 세계와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결과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분명 많은 것이 발전하는데도 주위를 돌아보면 그 발전 수준과는 정 반대의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목격한다. 이것은 우리가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리더라고 믿고 있는 높은 양반들의 세계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는 내일부터 폐기합시다. 이 간단한 결정을 실행하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설명은 그저 궁색하기만 하다. 너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라고 자신도 이해 못 할 말을 둘러대는 수밖에 없다. 이런 발전의 묘한 불일치와 세계로부터 분리된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물리적 꼬리의 퇴화를 거처 이제는 의식의 꼬리를 자라게 할 시점이다.


//…<꼬리 찾기> 중에서..(재발간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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