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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Jan 21. 2024

무한이 당신 곁에 다가올 때


매일 밤 만나는

당신의 무한


매일 밤 잠자리에 누우면 당신의 무한이 찾아온다. 눈을 감으면 아득하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의식의 공간에 생각이 떠다니고 낮에 있었던 일들이 그림이 되어 날아다닌다. 공간인 것 같지만 공간도 아니고 꿈인 거 같지만 꿈도 아니다. 이런 우주와도 같은 끝없는 무한을 우리는 매일 밤 마주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졸린 눈으로 덮고 매일 밤 이런 무한 속으로 녹아든다. ‘잠을 잔다’는 이해의 범주에서 이 도입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신비하지도 않은 일상이지만 가끔은 두려움을 동반된다. 그 아득함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공포와 우울감을 불러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쉼 없이 기댈 곳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집중할 것을 찾고 환경을 바꾸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고립과 구속에 익숙해진 당신에게 무한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며, 적극적으로 외면해야만 하는 이상한 경험이다. 일상이 아닌 특별한 순간에만 느끼는, 그래서 오히려 다행인 그런 부분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우주의 끝에 다다르면 그 밖에는 뭐가 있을까? 그 우주의 끝을 넘어, 또 그 우주를 감싸고 있는 그것의 끝에 도달한다면,  또한 그것을 담고 있는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모든 끝에는 그 끝을 감싸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만드는 모든 끝에는, 또 그것을 담고 있는 무엇이 있을 거라는 직감을 지울 수 없다. 성능 좋은 망원경을 발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관찰할 수 있는 끝만큼 우주의 끝은 늘어난다. 그에 따라 우리의 인식도 함께 늘어난다. 비단 밖이라고 생각하는 거대한 곳에만 무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선을 거두어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에도 역시 무한이 존재한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작은 것들도 볼 수 있게 됐다. 현미경의 배율만큼 우리의 인식은 안으로도 확장된다. 밖으로도 안으로도 도구의 성능만큼 우리의 시야는 확장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무한인 것처럼 그 끝도 무한으로 늘어난다.



무한

기준을 삼키는


시작도 끝도 없는 이런 무한은 막막함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한이라는 것은 어쩌면 건들지 말아야 할 금기의 영역이다.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외면하는 방법이라도 택해야 한다. 수학에서 무한은 대부분 오류로 간주된다. 인간에게 무한은 개체의 죽음으로 여겨진다. 마주 보는 두 거울에서 만들어지는 끝없는 반복의 동굴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무한이 당신 곁에 다가올 때 모든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 존재성을 잃어버린다. 마치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리듯 말이다. 무한이 곁에 다가오면 큰 것은 더 이상 큰 것이 아니고 작은 것은 작은 게 아니게 된다. 그 어떤 기준도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기에 크기가 사라진다. 다른 측정기에 임시로 기대어 명찰을 하나씩 달더라도, 그 측정 도구 또한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기준이 무한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존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의 것들에 기대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 처지다. 빨강이 주황에 기대고 주황이 노랑에 기대고 노랑이 초록에 기대는 것일 뿐, 무한이 다가오면 그 모든 실체성은 무지개 같은 허상이 된다.



그렇게

당신의 무한이

그러하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에 본능적으로 선을 긋고 외면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무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다가올지 두려워할 무한이라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을 소멸시킬 것만 같은 그런 것도 없다. 당신이 항상 그 무한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아니 함께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아무런 간극이 없이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으며, 잠자리에 들거나 지금처럼 성성한 의식으로 글을 읽는 순간에도 따로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보이고 들리고 말하는 모든 것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당신의 무한이다. 당신의 무한과 나의 무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당신의 무한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 자각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것은 미지의 대상이 아니며 전혀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미지와 두려움은 단지 회피로부터 오는 것이지, 당신의 무한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그것이었고, 지금 이 순간 그것이며, 죽음 이후에도 그것이다. 손을 들어 허공에 휘 저어보라. 그렇게 없는 듯 무한이라는 이름의 앎이 있다. 그렇게 무한으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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