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찾기 #12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았을 고전 ‘걸리버 여행기’에는 개념과 상대성, 즉 특정한 범주 안에서 이동하는 ‘꼬리’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주인공 걸리버가 조난을 당해 처음으로 표류하게 된 섬은 소인들이 사는 나라 ‘릴리퍼트’였다. 당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손바닥 위에 올라올 만큼 작고 귀여운 소인들이었다. 소설 속 소인들은 당장 곁에 두고 키우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소인국 사람을 꼭 선물로 받고 싶다는 천진난만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걸리버가 대인국에 가서 그 자신이 소인이 되자, 차라리 걸리버를 선물로 받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처음에는 걸리버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았으나,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에 대한 인식이 변해버린 것이다. 새가 낚아챌 만큼 작은 인형 집을 저택이라 여기며 살고, 거인들을 위해 식탁 위에서 재롱을 부려야 하는 걸리버의 처지가 릴리퍼트의 소인들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설은 걸리버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상정하고 양쪽 세계를 소인국과 거인국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걸리버가 각 세계에 머무를 때마다 그는 상황에 따라 거인이 되기도 하고 소인이 되기도 한다. 정작 걸리버라는 대상은 변함이 없으나,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의해 거인 혹은 소인이라는 존재감이 결정되는 셈이다.
동화 버전의 걸리버 여행기에는 주인공이 원래 살던 세상을 포함해 총 세 개의 세계가 등장하는데, 이는 각각 다른 세 가지의 컨텍스트를 의미한다. 인간 걸리버를 둘러싼 환경이 변할 때마다 우리의 꼬리는 그에 상응하는 기준점을 향해 부지런히 이동한다. 그에 따라 걸리버의 정체성 또한 수시로 뒤바뀐다. 그렇다면 이토록 가변적인 환경 속에서 걸리버의 진짜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거인인가, 소인인가, 아니면 보통 인간인가. 우리는 보통 인간이라는 정의가 옳다고 믿기 쉽지만, 사실 걸리버가 원래 살던 나라도 소인국이나 대인국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임의적인 세계일 뿐이다. 소인국 주민들은 자신들이 정상이며 걸리버와 대인국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크다고 여길 것이고, 대인국 주민들 역시 자신들이 기준이며 소인들이나 걸리버가 지나치게 작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때 제3의 관찰자인 당신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상황을 정리할지도 모른다.
“걸리버는 정상적인 사람이고, 대인국 사람은 거인이며, 소인국 사람들은 소인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소인국 출신의 누군가가 관찰자가 되었다면, 그는 세상 모든 존재를 거인으로 결론 내렸을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주장은 자신이 속한 컨텍스트 안에서 나름의 당위성을 얻는다.
소인들을 보며 ‘작다’는 존재감을 느낀다면 당신의 꼬리가 걸리버에게 닿아 있는 상태다. 반대로 걸리버가 거인처럼 느껴진다면 꼬리는 소인국 사람들을 딛고 선 것이다. 또 걸리버가 한없이 작게 보인다면 당신의 꼬리는 대인국 사람들에게로 옮겨가 있다. 이렇듯 대상에 대해 특정한 존재감을 느낄 때마다 내 꼬리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관찰해 보아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대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딛고 있는 기준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식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걸리버가 당신과 비슷한 사이즈의 외국에 사는 인간일 것이라는 원초적인 가정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당신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당신을, 그리고 걸리버를 정상적인 인간의 크기로 정의 내리고 인정할 것이다. 만약 이런 생각을 스스로 뒤집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바로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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