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시간

by pathemata mathem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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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든 것을 녹슬게 만든다. 이것은 화학적인 산화반응. 생물학 적 노화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해당한다. 시간이 얼마나 커다란 영 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의 삶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던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리고 갓 사 랑을 시작하여 뜨거웠던 커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친구와의 우정. 하 루의 절반 이상을 공유하며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들. 이 모든 것들 은 우리의 시야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시간의 영향을 받으며 소멸해간 다. 시간은 우리 모두를 녹이 슨 채로 병마용갱에서 수 천년 간 빛을 보 지 못하고 서 있는 토우들 마냥 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의 관계를 부패시킨다. 우리가 피를 나누었더라도, 살을 섞었더라도 부재의 시간은 우리를 멍 들고 병들게 만든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가 차지했던 공간을 지워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지워나 간 후에 서로 만나면 어색해지기 일쑤다. 왜냐면 이미 한갓 아는 사람 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의 부재에 대해 목념한다면 또는 애도한다면 서로 시간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관계의 부패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 단순히 돈 을 빌리고자 하는 것처럼 목적이 이익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고, 좀 더 오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돈이 많거나, 혹은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용당할 가치 가 충분한 사람)은 인간관계의 풍성함을 유지할 것이다. 물론 인간관계 는 개인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


요즘은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보고, 잠을 자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어쩌면 인간관계가 협소한 것이 미덕인 세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에 지겨움을 느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그는 SNS를 통해 익명 의 사람들의 일상을 관음하거나 지인의 일상을 훔쳐본다. 직접적으로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 인간관계인데, 다만 "좋아요(Like it)" 버튼을 통 해 남겨진 시간 기록으로 인간관계의 원형을 확인할 뿐이다.


T. 홉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면 인간관계는 그 안에 서 파생하는 수많은 피비린내와 땀내, 애증, 갈등, 번민을 가진다. 덕 분에 21세기 인간은 시간을 외형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인터넷의 기록 으로만 공유한다. 역사로의 인간관계이지. 실제로의 그것은 아닌 셈이 다. 우리가 감금과 도살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고 너무나 손쉽게 팩에 담긴 고기를 마트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의 인간관계는 단순해졌다. 이 제는 인간관계에 있어 시간은 중요한 요소로의 의미는 아닌지도 모른 다. 인간관계가 박제되었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를 뛰어넘는 영속성을 갖는다. 물론 영원히 모래처럼 사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건지 모 르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스킨십을 하고, 같이 먹고 마시며 잠드는 전통의 인 간관계는 부재의 시간이 주어지면 소멸해 간다. 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인간관계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받음 없이 신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 이 별자리에서 살아있듯이 인터넷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인간이 전 지전능한신보다 우월한 점은 실체성 때문이다. 실체성 없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공을 초월한 글과 사진 속에 만나는 인간관계는 신(god)적 이다. SNS 안에서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대체로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인간을 찾을 수 없다. 인간처럼 묘사되는 신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인간관계는 기술의 발달로 시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 지만 새로운 유형의 관계는 스마트폰으로 접속되며, 실체의 인간은 편 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홀로 저녁을 먹는다. 이제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단편적인 글들로 기록해야만 한 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더욱 비(非)인간화 되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오 랜 부재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색해져버린 친구가 보낸 비인간적인 '온라인'청첩장에서 상처받을 수도 있다.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하는 것이 친구의 SNS에 올라온 웨딩사진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보 다는 '인간'관계인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받고, 타인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 마주침의 종류에 따 라 행복(못과 망치의 만남)이 될 수도 혹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머리와 망치의 만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영원성을 표상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간관계에 의해 상처받고, 또는 부재의 시 간으로 인해 서로 망각해 간다고 하더라도 기억의 편린들은 영원히 남아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다. 친구들과 밤을 새며 떠들었던 1박2일 여 행, 걸음마를 떼던 아이의 기적, 처음 잡았던 연인의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져 가는 소중한 기억들은 온라인상이 아닌 실체적인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생성되며, 서로의 영원성을 표상하며 인간관계의 전승기념탑으로 남을 것이다.


#국세가족문예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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