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필수

by pathemata mathem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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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유명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웨이팅이 필수가 되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 보면 식욕이 극대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문제는 어디서 먹든지 식당에 따라 맛의 차이가 드라마틱 하게 크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줄을 서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식당이 일정하게 손님을 받고 있을 테지만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마태효과의 예시는 늘 보이기 마련이다.


식도락을 즐기는 아내 덕분에 주말이면 종종 맛집에 줄을 섰다. 이번엔 인천의 한 시장에 있는 닭강정 집이다. 묘하게 반대편에도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다들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다지 지루해 보이지 않다. 나는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무료하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내가 선 닭강정 집과 건너편 집은 같은 닭강정을 파는 것은 같으나 반대편은 원조집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장 골목의 원조집이 맞는다고 한다. 어쨌든 원조의 후광 덕분인지 몰라도 반대편 줄이 조금 더 길었다. 문득 공산주의 사회나 전시체제 하의 배급을 떠올랐다. 이 경우는 비용은 없으나 나는 돈을 내고 먹는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서 차례를 기다려 식량을 분배 받는 본질은 동일하다.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유무상)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종종 고려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부자인 사람들은 종종 줄을 서는 일이 발생하는 일 마저도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곤 한다. 적어도 이곳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 부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부유함과 거리가 멀기에 이 고난 행군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기다림은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행복일 것이다. 바로 매출이 올라가는 식당 주인이다. 그리고 이 기나긴 가난한 행렬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많은 종업원들은 지루하고 고단한 노동의 연속성을 이어나간다. 이 종업원들 역시 휴일에는 어딘가에서 줄을 서기 위해 맛집 투어를 가지 않을까? 이 질문에 전제가 잘못되었나?


아니다. 줄을 서기 위해 우리는 맛집 투어를 가는 것이 맞다. 그 이유는 맛집에는 사람이 운집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즉,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기보단 그것을 기다리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맞다. 유명하고 새로운 맛을 느껴보고 싶어서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식이 음식점에 도착한 순간 제 눈앞에 바로 나온다면 그 맛은 반감될 것이 뻔하다. 흡사 패스트푸드점이나 자판기와 같을 텐데 만족감이 들 수 있을까? 제 소중한 시간을 얼마간 투자하지 않으면 한갓 하찮은 음식일 뿐이다.


먹는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기다림이라는 자본주의의 마케팅 방식은 꽤나 효율적인 편이다. 작년부터 명품 오픈런 대란이 일곤 했다. 그리고 한정판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신발을 사곤 한다. 수요 대비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여 FOMO*를 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치로서 귀하지 않지만 재판매를 통해 가치를 부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재화를 사는 이 역시 재판매를 목적으로 구매하는 이가 상당수다. 즉, 팔기 위해 사는 소비가 생겨났다.

* fearing of missing out,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심리,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


유명 맛집의 음식은 또 어떤가? 적게는 한 시간 늦게는 n 시간의 기다림 끝에 사람들은 비로소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은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 인증숏을 남겨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 사진은 SNS에 업로드해야만 한다. 식사를 하기 전에 벌이는 이 신성한 의식은 다시 그 또는 그녀의 식사를 한참 동안 지연시킨다. 어쩌면 유명한 음식점에 방문하는 이유는 식사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사진을 남길 수 없다면 과연 음식점에 방문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던지면 아마도 음식이 맛있어서 가는 것이고, 사진 안 찍어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동성애자를 혐오하면 비(非) 문명인을 비치기에 동성애자를 이해하는 척하는 대타자가 작동하는 셈이다.


타인의 욕망을 꿈꾸는 삶이란 정작 자신의 욕망은 거세된 삶이다.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타인의 표정을 흉내 내고 타인의 복장을 한 채로 살아간다. 보다 앞서나간 사람처럼 보이려면 타인이 소유한 물건과 동일한 것을 얻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모습은 서두에서 말한 배급을 기다리는 가난한 군중과 다를 바가 없다. 설령 어렵게 갖게 된 물건이나 경험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보단 천천히 추락시키는데 일조한다. 생산보다는 소비를 장려하는 이 세련된 자본주의 전략은 기다리는 자의 시간과 돈의 낭비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타인이 바라는 것을 얻을 때만큼 시간이 필요할까? 첫 번째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고, 설령 찾았다고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면(쉽게 말해 자랑할 수 없다면) 폐기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실험은 성립되기 어렵다. 하지만 대상을 나로 한정해서 고려해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를테면 취미, 사업과 같은 구체적인 꿈)을 얻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얻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음식점이나 명품관에 입장하기 위해 적어도 노상에서 버려지지 않는다. 비록 내가 바라는 바가 얻지 못하더라도 신용카드 결제 대금을 발생시켜 LVMH 그룹(명품 다국적기업) 회장을 세계 1위 부자로 만들어 주거나, 맛집 사장님의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데 도움을 주진 않는다. 순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시간이 주는 많은 이점이 있다. 와인이나 위스키는 빈티지가 있어야 비싼 값을 매기듯이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한 기다림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대자적으로 행복감을 선사해 준다.


오늘날 음식의 미각적 쾌락, 핸드백의 미학적 완성도는 그것을 피사체로 한 인스타 사진이 받아내는 하트(♡)와 등가 교환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가진 입장권이 시간과 기다림이며, 이들의 줄이 길어질수록 이를 기획한 소수의 욕망은 계속해서 충족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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