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는 5번에 걸쳐 대멸종*이 일어났다. 그리고 공룡이 소행성 충돌을 원인으로 멸망한 것으로 유명한 K-Pg 대멸종이 벌어진지도 65백만 년이 지났다. 인간은 한때 세상을 지배했다가 치킨으로 진화해버린 공룡 꼴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6번째 대멸종 혹은 홀로세 멸종(Holocene extinction)이 현대 문명에 의해 인간에 의해 마무리 지어지거나 인간이 노아의 방주처럼 구원자가 될 것인가?
* 한 생물권의 생물종 75% 이상이 멸종되는 사건
나는 이 글을 자연보호를 위해 할애하고 싶지 않다. 그린피스, ESG 경영, 분리수거, 종이 빨대에 이르기까지 자연보호를 위한 테제는 넘쳐난다. 그런데 한 번 자문하고 싶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할 능력이 과연 존재하는가? 힘 있은 자가 하는 것이 용서라고 하는데, 이 대멸종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데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린 것에 불과한 것인가?
대멸종부터 작은 멸종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종은 지속적으로 멸종해왔다. 이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며 그를 통해 진화론이 주류 학문이 되었다. (모든 유명한 고전이 그렇듯이 실제로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다윈이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Natura non facit saltum)." 즉, 인간의 유한한 삶으로는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진화를 볼 수는 없지만 화석이나 종(種) 간의 근연관계를 통해 그 흔적을 밝힐 뿐이다. 하지만 무수한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시작되었고 그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이를테면 자연보호라는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화론적 관점으로 볼 때 대멸종은 흔히 일어나진 않지만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이다.
인간은 연민을 품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꽂힌 바다거북, 빙하가 녹아내려 굶주리는 북극곰의 이미지는 베트남전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 사진을 연상케 한다. 이미지가 곧 메시지인 SNS 세상에서 환경보호를 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윤리적인 행위로 인식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양의 공장식 축사를 만들어 소와 돼지, 닭 등을 사육하고 끊임없이 식탁 앞에 놓이도록 도축하고 있다. 반려동물로 추앙받는 개와 고양이는 어떤가? 공장형으로 발정시켜 유통한 후 주인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 거세시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마치 데카르트가 인간 이외에 동물은 마음이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사유한 것이 떠오른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윤리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단 한 가지, 자신이 직접 소를 도축하지 않고 개를 거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밀한 공간에서 동물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공장의 소음에 불과하다.
정리해서 말하면 인간은 편의적으로 동정심을 충족하기 위해 환경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인간이 과학 문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오존층 파괴를 막는 것에 성공한 것처럼 탄소를 절감하면 지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당찬 포부가 느껴진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자연보호의 논리는 진화론적 개념이 아니라 창조론적 개념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창조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일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끊임없이 근친 교배시켜 인위적인 열성 유전자를 발현시켜 수 백종의 애완동물 종류를 지난 200년 이내에 탄생시켰으니 자신감이 찼을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식용 가축, 작물 등 인위적인 교배로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기까지 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유전자를 직접 조작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도 존재한다. 인간이 다른 종을 심판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의 형상을 한 21세기의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능을 함부로 사용하여 새로운 원죄를 갖고 있다. 화석연료에서 비롯된 탄소 사용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늘고 있고, 지구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즉,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과학계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의 결론은 무엇일까? 인류의 문명 발전으로 인해 발생한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번성을 위해 본능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인간의 실수로 죽어가는 귀엽고 가련한 동물들을 위해 자연보호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종 치킨을 즐겨 먹거나 거세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지독한 위선이다. 마지막으로 환경 변화는 인간이 지구 온난화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그 역시 피해자일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페름기 삼엽충과, 백악기 공룡은 대멸종을 당하기 전에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간처럼 공장을 가동하진 않았다. 만일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막는 것을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든 종의 창조자도, 수호자도 아니다. 다만 5번이나 죄 없는 생명체들을 대멸종 시킨 지구와 태양의 피해자일 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해 2살배기 아이를 학대치사한 부모의 예를 들며 신이 악을 통해 선을 돋보이기 위해 무고한 아이를 희생시켰냐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동학대를 한 부모가 나쁜 것일 뿐이지, 그를 대신해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극곰은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죽은 것은 아니므로 너무 자책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