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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스터와 아이튠즈, 지브리와 ChatGPT

by pathemata mathemata

나는 음악의 저장매체가 테이프, CD, MP3, 스트리밍 서비스로 몇 년을 주기로 바뀌는 격동의 세기에 10대, 20대를 보냈다. 특히 MP3를 처음 접했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카세트테이프와 CD 역시 기존에도 복제가 가능했지만 불편했고 특히 테이프는 복제 시 음질 저하가 심했다. 21세기를 전후로 인터넷 혁명 시대를 맞아 MP3 파일 공유는 냅스터(Napster), 소리바다와 같은 P2P프로그램이 생겨나면서 원하는 음악을 '무료'로 손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게다가 MP3는 음질 저하 문제마저 일어나지 않아 말 그대로 천지개벽할만한 사건이었다. 물론 MP3를 무단 복제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었으며 결국 냅스터 개발사는 대형 음악사들의 잇따른 소송에 의해 파산하게 된다.


반면 이러한 냅스터의 성공과 실패는 애플 CEO인 고(故) 스티브 잡스에게 영감을 주어 아이튠즈를 탄생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성공시킨 후 저작권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대형 음악사를 설득하여 앨범 단위로 판매하던 음악을 1곡씩 판매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전략을 썼다. 원래 아이팟과 PC를 연결시키던, 정확히 말하면 PC의 MP3파일을 아이팟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아이튠즈(itunes)라는 플랫폼에서 MP3를 판매했다. 당시 아이튠즈 담당자는 6개월에 100만 곡 판매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오픈 후 6일 만에 100만 곡을 판매했다. 사람들은 MP3의 저작권료를 지불할 방법을 몰랐고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즈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비슷한 사례로 영화나 TV 드라마도 테이프나 CD로 무단복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MP3처럼 저작권 있는 영상을 공유하는 P2P프로그램인 토렌트(torrent) 프로그램이 유행하였다. 당연히 저작권 문제로 인해 프로그램 개발사가 아닌 사용자가 형사고발되기도 했다. 물론 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유명한 넷플릭스(Netflix)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저렴한 가격에 저작권 문제없이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 이제 저작권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게임이나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의 저작권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어릴 적 조립용 PC를 전자상가에서 구매하면 게임과 윈도 OS, 한글 같은 OA프로그램이 불법으로 다운로드되어 있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CD나 DVD플레이어가 PC에서 사라지면서 각종 프로그램은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유명한 게임구매 플랫폼인 밸브(Valve)가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이러한 불법 복제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의미했다. 저작권 문제는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서비스에서 구매 혹은 구독형 요금제가 대중화되며 일단락된 듯싶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다시 한번 저작권 문제가 화두가 된다. 이는 레이 커즈와일이 이야기했던 특이점(singularity)에 가까워진 Chat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낸 ChatGPT

이렇게 제작된 AI이미지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AI 이미지의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AI 저작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AI 생성물은 저작물로 볼 수 없으며 저작권 등록 대상도 될 수 없다"라며 "인간이 전체 기획을 하고 명령어(프롬프트)만 입력한 경우도 저작권 등록은 불가하다"라고 명시했다. 창작물의 표현에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AI 생성물을 활용한 인간의 2차적 창작물도 마찬가지다. 다만 인간의 독창성이 인정되면 '편집저작물'로 등록이 가능하다. 즉, 이 경우에는 저작권의 일종으로 보호받는 것이다.*

* 출처 : AI 그림·소설 저작권 등록 못한다, 매일경제, 2023.12.18


AI생성물의 저작권 인정은 이로써 일단락 나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생성형 AI의 방대한 학습 대상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나 심슨가족의 애니메이션을 따라 그린다고 해서 원본 그대로 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림만 예시를 들었을 뿐 음악, 소설, 코딩 등 인간의 다양한 지적 영역 전반에 해당된다. AI 학습모델이 설령 오픈소스(open source)로 공개되어 있다고 해도 AI 창조 과정은 개발자마저도 해석할 수 없는 블랙박스에 가깝다. 이는 한 인간의 학습과정을 100% 반추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다. 이는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자주 인용하던 말이다. 그 역시 제록스 사(社)가 최초로 만들어낸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벤치마킹해 우리가 아는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하는 개인용 PC의 시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스티브 잡스의 맥 OS를 베낀 것이 우리가 다양한 공간에서 쓰고 있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OS이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에게(애플이 제록스에게, 마이크로스프트가 애플에게) 저작권을 지불하지 않은 것은 모방 뒤에 있는 독창성 때문이다. 다만 생성형 AI가 더 발전하여 의식이 있는 자아, 인간과 같은 마음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저작권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인간이 명령프롬프트에 입력했다는 이유로 AI의 노력이 무시되지 않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혹은, AI가 법에 호소해 자신의 저작권을 요구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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