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에 리서치 형식의 글을 투고할 기회가 생겼다. 기록물로 남게 되니 사명감을 가지고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논문 등 글을 위한 참고문헌을 수집해 읽었다. 그중 긴 영어 논문도 열심히 읽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은 대학 다닐 때 제출했던 리포트보다는 보다 진지한 자세로 글을 썼다. 초고를 제출할 시간이 다가오자 그냥 제출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웠다. 그래서 내 글에 대한 사전 이해도가 있을법한 회사의 지인 4명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로 내가 쓴 글에 대한 리뷰를 부탁했다.
4명 중 2명은 읽어보겠다고 이야기하고 아무 소식이 없다. 괜찮다. 겨우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내가 직급 상 더 위라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자위했다. 이제 두 명이 남았다. 그중 한 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메신저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너무 빨리 물어보아 정독한 것 같진 않지만 제법 날카로운 송곳 같은 질문들을 내게 날렸다. 그와의 메신저를 복기해 보니 얻을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남은 한 명은 나보다 선배이자 이전 부서에서 직속상관이기도 했다. 오후쯤 되어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한글 파일에 빼곡하게 메모를 붙여 첨삭을 해왔다. 그가 언급한 부분은 굉장히 뼈아픈 부분들이었다. 왜 그 정도밖에 글을 쓰지 못했을까 자책이 생길 정도로 자세히 읽고 정성껏 피드백해 준 것이다. 물론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스마트한 직원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별다른 대가 없이 알려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내가 다시 읽어보았을 땐 완벽해 보였는데 두 명의 리뷰어를 거치고 나니 꽤 부끄러운 글이었다. 지금까지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글을 써서 올렸는데 이렇게 흠집 많은 글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순히 맞춤법 검사를 통과했다고 해서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내 글을 읽으면 결코 글의 부족한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타인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큼 복된 것은 없다고 본다.
괜스레 글을 보여줬다 부끄럽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 보니 ChatGPT 같은 생성형 AI에게 내가 쓴 글의 리뷰를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IQ 검사를 해보니 상위권 모델은 지능지수가 130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웬만한 인간보다 첨삭 능력이 뛰어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AI에게 숙제 검사를 맡는 것은 꽤 꺼려지긴 한다. 앞으로 내가 거의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글쓰기 영역마저 설자리가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공유 플랫폼 우버(Uber) 진출을 반대했던 택시 운전기사들을 욕할 입장이 아니다.
각설하고, 남에게 불완전한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뻔뻔함이다. 미사여구로 포장하면 용기(courage)이다. 그런데 보다 완전함을 추구하려면 부족한 글을 남에게 계속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 계속 뻔뻔해질 수밖에 없다. 온전히 자유롭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자위(masturbation) 했다는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였지만 그 역시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계속 뻔뻔해야 조금은 덜 부끄러운 글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준 소수의 독자를 의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글쓰기는 어두운 내 방 안에서 벌어지는 자위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꽤나 고통스러운 자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