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저자의 짧은 글인 <항소이유서>를 읽게 되면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과 같이 이른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순수한 선민의식'을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유시민은 이후 정치인이 되어 자신이 몸담은 개혁당 성폭력 사건을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라고 축소했다.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도 저자는 자신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발언을 계속해오는데 최근 대선 당시에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설난영 씨를' 순수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자인 김문수와 급이 맞지 않다고 표현했다.
이 글을 읽게 되면 저자가 피해자들에 대한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없이 대의를 위해 그들을 희생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가짜 학생으로 몰려 구타당한 이들 4명 중 한 명은 정신병을 얻었고 2명은 정상적 삶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국가 권력을 흉내 내어 무차별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무너진 삶에 대해 반추하는 것은 저자에게는 지금도 '조개 줍는 일' 정도일까?
월간조선에 따르면 폭행 피해자는 정용범(47), 전기동(51), 임신현(48), 손형구(41)씨다.
이 중 정용범 씨는 폭행 피해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 현재까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씨의 어머니 전영재(79)씨는 "맞고 집에 왔을 때 온몸이 시퍼렇게 돼 있었다. 그 전에는 공무원 시험 공부도 하고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했다. 얻어맞은 후부터 헛소리를 하고 완전히 병신이 됐다. 후유증으로 몇 년 동안 밤에 제대로 못 자고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장가도 못 갔다"고 했다. 정씨는 현재 음악 CD를 카페에 돌아다니며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린다고 한다.
전기동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고시 공부를 접었다고 한다. 몸이 아파 책상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자주 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전씨는 뒤늦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 현재 관악구청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폭행을 당하던 중 병원에 실려갔던 그는 “유시민은 지금까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변명하고, 거짓말을 하다가 기회만 되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피해자들의 가슴에 끊임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 유시민은 사건 당시 나이가 제일 많은 자로, 현장을 오가며 교묘하게 치고 빠지고 하면서 폭행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라고 했다.
임신현씨는 폭행 이후 대인기피증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대학 진학을 접었다고 한다. 임씨는 “당시 이놈이 들어와서 한시간 패고, 저놈이 들어와서 한시간 패고…. 민간인을 패 놓았으니까 문제가 될까봐 어떻게든 프락치라는 기록을 남겨 놓으려고 자백을 강요한 것 같다”고 했다. 임씨는 입시 공부를 포기하고 절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단청(丹靑) 기술을 배워 생활한다. 그는 “그 사람(유시민) 보기 싫어 TV를 안본지 오래됐다. 거짓말을 좀 했다고 가둬놓고 폭행하는 것들이 인간이냐. 그런 사람을 공직에 임용하는 나라가 한심스럽다. 내가 사는 곳이 하필이면 유시민의 지역구(경기 고양 덕양갑)인데 여유만 좀 있다면 이사가고 싶다”고 했다.
손형구씨는 현재 해외에 머무르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한 이후 외국에 나가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다. 손씨 어머니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골치가 아프다”라고 했다. 그는 “나는 그 사람(유시민) 인상만 봐도 싫어요. 아무리 나라에 인재가 없어도 그렇지 그런 자를…”이라고 했다.
- 유시민 때문에 인생 망친 4명, 그 후…, 2006.1.19, 조선일보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일뿐이다. 독재 정권을 맞서기 위해, 가짜 학생을 색출하기 위해 민간인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된다. 저자는 독재 정권의 학생 탄압에 맞서는 정당방위 논리로, 혹은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조국의 유명한 '오상방위'로 궤변을 이어나간다.
이 집단폭력이 목적에 의해 수단이 정당화되는 모습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유시민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민주화 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숭고한' 목적 외에 일진 출신 학교폭력 가해자와 어떤 점이 다른가? 무엄하게도 학적 없이 서울대학교에 발을 디딘 가짜 학생들과 학벌이 다르긴 하다. '서울대학교 학부 출신 엘리트'니까 그들은 정부의 프락치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가짜 학생'을 단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저자는 직접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것은 자신이 아니며 다만 책임자로서의 책임만 질 뿐이라고 선심 쓰듯이 항변한다. 이 논리는 마치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죽을 때까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지시자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물어본 진보진영의 논리와 대비된다. 유시민의 항소이유를 따라가면 내란 진압을 실제 수행한 공수부대와 특전사들의 죄일 뿐이지 이를 지시한 전두환은 물리적 행위가 없으므로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나는 단지 저자의 '내재적 관점'에서 설명했을 뿐이다.
1987년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당시 탄압받던 명문대 출신 청년들은 자신들은 부정하겠지만 그때도 기득권 꿈나무였지만 이제 실제로 기득권이 되어 경제성장률에 걸맞은 개인 재산 형성과 함께 윤리적 우월성을 가져가고 있다. 괴물의 목은 잘렸고 신(神)은 죽었는데 지금 있는 괴물, 혹은 신은 누구인가? 따라서 니체가 다시 한번 옳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이 글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못 비장한 러시아 시인의 시구는 다음과 같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니콜라이 네크라소프
이 인용구는 저자가 유학했던 독일의 위대한 지성인 칸트의 명언으로 대체되는 것이 적합하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하라. - 도덕 형이상학의 정초, 임마누엘 칸트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하에서 수 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 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이었으므로, 조사 결과 그들이 정보원이었다고 해서 폭행까지도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 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 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현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 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폭력 과격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