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회사에서 보리수 열매를 얻어왔다. 보리수나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유명한 나무이다. 보리수의 보리는 산스크리트어로 बोधिसत्त्व(Bodhisattva), 한자로는 菩提薩埵(보리살타)의 줄인 말이다. 보리살타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불교 용어인 '보살'이다. '보리'는 깨달음을 의미하고, '보리살타'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보리수 열매의 맛이 궁금했다. 달콤하고 새콤한 맛인데 식감이 매우 오묘하다. 마치 치즈처럼 꾸덕꾸덕한 느낌이 드는데 외형은 체리를 닮았는데 크리미한 식감이 이질감을 가져다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보리수 열매를 청이나 잼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담금주로도 쓰인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가져온 양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적은 양이다. 열매를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한가로이 깨달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부처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나는 불교의 윤회도 부처도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석가모니와 같이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필멸에 대해서는 동일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 깨달음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한한 삶의 기반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불교는 힌두교의 윤회를 차용했지만 영겁의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부처가 되고자 한다. 생(生)의 고통에서 벗어나 무(無)가 되길 간곡히 바라는 것이다. 지금도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길 기원하며 화장(火葬)을 고집한다.
보리수 열매를 먹고 나면 씨앗이 차곡차곡 남는다. 그들 중 일부는 보리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열매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윤회 아닐까? 하나의 개체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길어야 수십 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종은 평균적으로 400만 년 정도 수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인간이 발명한 책의 위대함과 인간에게 남은 380만 년에 대해 노래했다. 인간은 지금 13만 년에서 30만 년 정도를 사용했다. 인간이라는 종이 느낄 생의 고통은 400만 년에서 살아온 평균 20만 년을 제외하면 380만 년 정도 남았다.
보리수, 혹은 깨달음의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남겼다. 인간은 보리수 열매를 먹으며 다시 그 열매를 얻기 위해 보리수를 심는다. 그렇게 윤회는 계속되며 하나의 삶은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죽음은 이렇게 다른 삶으로 대체되고 극복된다. 그리고 인간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불멸의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