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던 자는 경쟁자의 승리를 보자 당황하며 허둥거리다 밧줄 위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는 장대를 놓쳤고 손과 발을 허우적거리며 장대보다도 더 빨리 아래로 떨어졌다. 시장과 군중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같았다. 모두들 흩어지면서 서로 짓밟았다. 특히 줄타기 광대의 몸이 떨어진 곳은 아수라장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장희창 옮김
강릉의 유명한 관광지인 오죽헌이 여름맞이 야간 개장을 했다. 특별히 3일간 줄타기 공연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 공연의 마지막 날 줄타기 명인(名人)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50년간 줄을 탔다고 했다. 50년의 세월이 지나면 줄을 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까? 줄을 오르락 내리다가 노인이 된 명인은 줄을 타는 것은 얼음산을 타는 것처럼 살금살금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긴, 운전 경력이 수십 년이라고 하더라도 눈을 감고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법일 것이다. 운전대를 매번 잡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긴장감이 줄을 타는 반세기 동안 그의 다리에서 전율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을 것이다.
명인은 능숙한 솜씨로 줄의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 두 손을 막대에 의지하고 난 뒤 한참 관객에게 농을 지껄이고 나서 부채 한 개에 의지한 채 순식간에 줄을 탔다. 저녁 8시에 가까워졌고 이미 해는 저물었다. 사위가 어두워지는 것을 현대식 조명이 막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은 전부 돌이었다. 자칫 실수한다면 선혈이 낭자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곡예사가 거침없이 줄을 타자 관객 입장에서는 긴장감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그는 한 다리로 줄을 탔다. 박수소리가 거세졌다. 그는 반대로 줄을 탔다. 관객들의 응원 함성은 더욱 커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줄을 탄 채로 점프를 했다. 별안간 줄타기 장인은 땅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그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폴짝 뛰며 줄을 타는 이의 마무리 동작이었다. 명인의 공연을 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안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명인은 이윽고 자신의 제자를 불렀다. 젊은 제자지만 그 역시 줄을 탄 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제자는 보다 빠른 속도로 줄을 탔다. 같은 기교와 비슷한 동작이었지만 스승보다 힘이 실려있었다. 스승은 제자의 뒤편 관객석에서 그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임시 관객석인 돌 위에 편안히 앉아 그들의 영상을 찍었다. 이후 스승과 제자의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관람하는 동안에는 잘 몰랐지만 스승의 자세, 특히 부채를 쓰는 손짓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제자 역시 30년의 세월을 외줄 타기에 보낸다면 스승이 보여준 편안함을 갖출 수 있을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을 짐승과 위버멘쉬(초인) 사이 밧줄에 놓인 존재라고 했다. 외줄 타기의 고통과도 같은 운명을 사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트로트곡 제목인) 아모르파티(Amor Fati)를 제시했다. 비유가 아닌 진짜 돌 위의 외줄타기를 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은 수십 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느끼는 일이다.
앞서 나이 든 명인은 어린 관객에게 농담했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아저씨처럼 이렇게 줄이나 타." 줄을 타는 그의 재주는 모든 것을 내걸고 일하는 삶이기에 누구에게나 권할 수 없다. 그래서 고결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