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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류의 뒷면

by pathemata mathemata

아내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대화가 이런 주제로 흘렀다. "예전에는 한국 음식으로 김치 냄새난다고, 떡볶이 식감이 물컹하다고 외국인들이 싫어했다. 일종의 음식으로 인종차별을 한 것이다. 메이저리거 야구선수였던 박찬호가 김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다가 동료 선수들에게 항의 받았던 일화는 꽤 유명했다. 세월이 흘러 한류와 그 하위 장르인 K-POP가 대유행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맛보고 싶어 하는 긍정의 음식이 되었다. 음식의 맛은 그대로인데 그들의 의식이 바뀌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대박을 낸 애니메이션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한국 음식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문제의 김밥도 주인공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국뽕에 찰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즐기는 한류라는 유행이라는 것은 화려한 영상과 음악, 풍요로운 의식주와 같이 물질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자본주의적이며 유물론적인 한류에 한국인의 정신이 들어있는 부분이 있을까? 한국인의 역사가 깃든 문화인 한류 역시 정신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마태복음 4:4


한류 열풍 이전에 유행했던 90년대의 홍콩 영화 열풍을 생각해 보자. 당시의 우리가 홍콩 영화와 배우 주윤발을 좋아한다고 해서 스크린 밖 홍콩 사람이 느끼는 홍콩을 알 수 있을까?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역사적 순간에 세기말 현상으로 꽃피운 회광반조와 같은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공감했을까?


주윤발, 영화 <영웅 본색>

화려했던 화양연화 시절의 홍콩에는 관광명소인 빅토리아 피크뿐만 아니라 범죄의 온상이었던 거대한 치외법권 지역인 구룡성채도 존재했다. 마찬가지로 화려한 한류의 뒷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40년 넘게 살아온 이로써 주관적인 경험에 입각한 한국은 어떤 곳일까? 이에 앞서 잠시 방한한 한국을 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신경끄기의 기술>의 작가 마크 맨슨의 평가를 살펴보자.


맨슨은 유교가 가진 수치심과 남을 의식하는 판단이 자본주의의 현란한 물질주의와 결합한 것을 한국인이 우울한 원인으로 들었다. '가족 및 지역 사회와의 친밀감'이라는 유교의 좋은 점은 버려두고, 자본주의의 좋은 점인 '자기 표현 능력과 개인주의'는 무시한 채로 상충되는 이들 가치만 조합한 것이 "아마도 엄청난 스트레스와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우울한 한국, 유교·자본주의 최악이 결합" 美작가의 여행후기, 뉴스1,| 2024-01-28


유교 걸이니, 유교 보이니라고 자기를 규정짓지만 순자의 '측은지심'과 같은 이타주의에 입각한 타인에게 관심은 없다. 반대로 억압적인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자기 검열과 수치심은 서구권보다 상대적으로 심한 편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교 문화권이라 불리는 중국, 일본 등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정서를 코믹하게 표현한 홍콩 출신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Jimmy O.Yang의 영상(아래)를 참고하기 바란다.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https://youtube.com/shorts/PHrvRUJ4SRc?si=OZwKFx5Uh_XHXBiS


마크 맨슨이 말했던 개인주의 측면에서 말하면 일본은 일찌감치 근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이뤄냈다. 이제는 고전이 된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100여 년 전 소설들을 보아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일본은 현재 부부 사이에도 각방을 쓰고 노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 대학교까지 정규 과정을 마친 후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삶에 있어 개인주의는 꽤나 동떨어진 정서였다. 학창 시절에는 끊임없이 타인과 성적을 비교하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취업이 성공의 척도였다. 직장 생활에서도 사생활이 보장받긴 힘들었다. 현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잦은 회식이나 휴일에 등산 가는 것은 그저 일상이었다. 또한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 등 신상은 직장 동료들과 친소 여부를 떠나 종종 밝혀야 하는 것들이었다.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결혼생활 역시 시작 전부터 남들과의 비교는 끊이지 않았다. 프러포즈, 신혼여행부터 신혼집 등 열거하기 입이 아플 정도이다. 그나마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팬데믹(전염병)이 전체주의적 대한민국에 개인주의를 전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에게 따라온 것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온 집단적인 우울감이다. 공정하지 못함에서 오는 우울증은 심지어 원숭이에게도 발견되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타인과 비교가 잦다는 것은 열등감에 끊임없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지금껏 빠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는지 몰라도, 한류 열풍을 이뤄낸 한국인의 정신은 결코 건강하지 않다.


성별 우울감 경험률, 지표누리


그 결과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OECD 주요 국가 20년간 자살률 추이, 데이터줌


WHO 자살통계(2021년)를 통해 보아도 조사대상 185개국 중 10위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전세계 국가자살률, 데이터줌(WHO)

2023년 경찰청 변사자 통계 자살 원인별 자살 현황에 따르면 가장 높은 원인은 정신과적 문제(37.7%)였다. 경제생활문제(25.9%)를 약 12% p 높은 수치이다.

2023년 자살 원인별 자살 현황, 데이터줌(경찰청)


전 세계 꼴찌인 합계출산율은 높은 주택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만연한 우울증과 인과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도파민·노르아드레날린 같은 기분·동기·쾌감 관련 화학물질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특히 도파민 감소는 성욕 전반을 줄인다. 또한 우울증의 대표 증상인 무쾌감증(Anhedonia) 때문에 성적 자극에도 반응이 둔해진다. 우울증은 자존감 저하로 스스로를 매력 없다고 느끼거나 몸 이미지에 불만이 생겨 성적 자신감이 약해진다. 또한 피로와 수면장애로 체력과 에너지가 부족해져 성욕으로 이어질 여지가 줄어든다.

합계출산율(1970~2024), 국가지표체계


진정한 한류의 뒷면은 바로 한국인들이 겪는 집단적 우울감이다. 두꺼운 화장에 가려진 얼굴은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울고 있는 피에로 같은 모습을 결코 타인의 시선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한국어를 배우고 K-푸드에 열광하며 한국인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한류가 결코 기쁘지 않다. 결국 타인(외국인)의 시선에 의해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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