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022년부터 현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의 기능을 상실한 이래 민간에게 관람용으로 일부 개방되었다. 휴일을 맞이하여 나 역시 관객의 일원이 되어 청와대에 방문하였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시청역에서 내렸다. 3.1절을 맞이하여 시민단체에서 스피커를 동원하여 대규모 집회를 알렸다. 이제 그 '시민'의 목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들을 대통령은 근처에 없는데, 덧없어 보였다. 이른바 '시민'들은 나이가 족히 평균연령 70대로 이루어진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모처럼의 행사 때문인지 시끄러운 스피커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고조되어 밝은 표정 일색이었다.
청와대는 경복궁을 따라 직선거리를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경복궁 역시 조선왕조의 집무실이자 관저로 500년 이상을 사용한 공간이다. 청와대는 바로 경복궁의 머리맡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버스에 내려 청와대 관람을 시작했다. 관람객 중에는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한 외국인은 청와대 한국에서 수십 년 살았는지 능숙한 한국어로 "여기 심은 나무들 정말 비싸."라고 자신의 가족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실제로 본관 앞뜰에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관람객들은 동선을 따라 청와대 안에 들어갔다. 영부인과 대통령의 집무실과 연회실 등이 대중에 공개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샹들리에와 그림을 제외하고 내부는 대체로 텅 비어있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초반에 보이는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였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시대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전주 경기전 어진 박물관에 있는 역대 임금의 어진이 떠올랐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 화가에게 비춘 표정이었을 텐데, 어쨌든 대체로 근엄했다. 영원히 주군을 기억시키려는 왕실과 청와대의 의도와 달리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오브제로 권력의 빈자리에 머물러있다.
좌)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우) 프란시스 베이컨,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를 본뜬 습작
청와대 본관의 통유리로 왕비의 처소였던 경복궁 교태전 후원이 연상되는 조경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은 왕과 왕비의 일상을 재현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어쩌면 일부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봉건왕조의 비극이 재현되어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쿠데타, 살해와 자살 등 유혈로 낭자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관저로 가는 길에 있는 경무대 터가 눈에 띄었다. 경무대는 청와대의 구 본관으로 조선 총독의 관저였다. 해방 후에는 미 육군 중장 하지 장군의 관저로 쓰이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였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현재의 청와대가 설립되어 집무실이 바뀌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면서 구 본관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텅 빈 공간은 주차장으로 변해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제 철통같은 보안 속에 있던 청와대 집무실마저 관광객의 소음으로 뒤덮였다. 시간이 더 흐르면 권력의 흔적은 미래의 박물관 한 귀퉁이에 먼지를 맞으며 조금이나마 더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다.
청와대 본관을 벗어나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대통령 관저가 있다. 도착하니 건물 안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다만, 침실, 드레스룸, 식당 등이 밖에서 보이도록 오픈되어 있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세간살이 하나 없이 텅 비어있다. 나는 마포에 있는 최규하 대통령 가옥이 생각났다. 그곳에는 생전의 유품들이 다량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로 <응답하라 1988> 같은 시대극 촬영에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생생함을 주었는데, 이곳은 경복궁처럼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유명한 핫플레이스인 서울숲에 가면 보이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외관이 내 눈앞에 멋지게 펼쳐진다고 내가 관람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다만, 미용실에 일부 전기제품 집기류가 남아있는 흔적이 보였다. 대중(언론) 앞에 나서기 전에 하인들(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을 빌려 분을 칠하는 대통령(왕)과 영부인(왕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회한 얼굴, 가려지지 않는 주름에 먹지 않는 메이크업에 한숨 쉬었을 나날들이었을까? 아니면 영광의 날들이었나? 지난날 청와대의 주인은 더 이상 없다. 대통령이라는 대타자 직함이 벗겨지면(권력 이양이 임의적이든 강제적이든 간에) 그는 실재계로 물러나 영원한 상실이 된다. 다시 말해 권력자는 (레닌이 자신의 바람과 달리 백 년간 잠들지 못했던 것처럼) 초상화의 일부로 남아 그것이 잿더미가 될 때까지 거세된 팔루스(권력의 상실)로 남을 것이다.
이 글은 '경복궁=청와대'를 고찰한 것이다. 그리고 이 등식은 권력의 명멸과 함께 계속해서 연장되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