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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Mar 09. 2023

모두가 유아(infant)인 나라



유아(infant)란 출생부터 1세까지 시기를 말한다. 이 말의 어원은 '말을 모르는 아이(in-fans)'를 뜻한다. 라캉에 따르면 아이는 폭군이다. 왜냐하면 그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성장하면서 상징적인 의미의 거울을 마주하면서 죽어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이동하고, 폭군에서 말하는 자동인형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은 시니피앙*에 종속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힌트가 나온다. 왜 한국인은 성인 이후에도 유아기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는지 말이다. 앞선 사전적 정의를 따라 본 글에서 '유아'는 한국인은 대체로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임을 의미한다.

* 언어의 말뜻(기의)이 아닌 말의 음성(기표)을 의미하며 라캉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시니피앙을 중시했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도 심리 상담, 정신분석이 대중화되었다. 얼마 전 TV를 보니, 'K-장녀'라는 수식어를 쓰면서 이를 병리적인 현상으로 규정했다. 이를테면 좋은 음식, 좋은 곳을 가도 부모와 같이 가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다라든지,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결혼 상대를 구하는 등 성인으로의 주체성이 결여된 상태를 말한다.  패널로 나온 정신과 의사는 성인으로서 경제적인 독립심을 갖고 죄의식을 떨칠 것을 충고했다. 그는 부모와 독립해 있었지만 자신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한 자신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 역시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걸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그 역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다시 앞에서 언급한 아이의 말 배우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국어는 존댓말이 가장 발달되어 있다. 이는 대타자(프로이트의 용어로는 초자아)가 다른 문화권보다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수백 년간 발달되어온 봉건 제도의 잔재는 언어로 남아있다. 말을 배운 아이는 더 이상 폭군이 아니다. 원시의 아버지(원 가족의 부모)는 영원히 존댓말로 대응해야 하는 무서운 팔루스(phallus)다. 


TV 속 정신과 의사가 그의 어머니에게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외쳤을까? 아니다. "내 집에 함부로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다. 존댓말의 범람으로 인해 한국인의 대상 a는 더 큰 구멍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그는 부모와 동등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부모와 야자타임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극복할 수 없는 아버지, 존댓말의 대상인 대타자에 의해 정신병의 증상을 계속 심화시킨다. 육아의 구루(guru)로 추앙받는 오은영 박사가 이야기한 "아이는 남(타자)입니다."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있어 자녀는 타자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고 노예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존댓말은 예로부터 신분이 낮은 노예에게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가축은 유형성숙(幼形成熟, neoteny)을 통해 길들여졌다. 이는 근친 교배를 통해 유전적인 특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가까운 사례로 개가 있을 것이다. 개는 성견이 되어도 강아지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 역할을 하는 주인에게 극도로 의존적이다. 인간은 13만 년 전과 유전자의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대인의 유전자는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이른바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흡사 강아지와 같이 부모에 의존적인 경향성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요즘 유행하는 단어이자,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밈(meme)이라는 문화적 유전자 개념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존댓말이라는 밈이 있다. 한국인의 상징계는 존댓말로 이루어진 것이다.


K-장녀라 불리는 신경증 환자를 주이상스(향락)의 만족을 고통으로 만드는 밈(meme)인 존댓말을 초월하는 방법은 있을까? 이 환상을 가로지르는 손쉬운 방법은 단 하나인 것 같다. 부모-자식 간 야자타임이 안되면 서로 존댓말로 대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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