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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May 01. 2023

신도림 리더스 클럽(Sindorim Reader’s

이제는 사라진 신도림 사무실을 추억하며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주인공이 에이즈 대체치료제를 다른 나라에서 밀수해 환자인 회원들에게 판매하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꽤 거창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서울 신도림에 위치한 우리의 독서클럽(동아리)은 회원 각자가 자발적으로 독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독서클럽은 내가 다니는 회사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읽은 책을 다른 직원 한 명에게 빌려주면서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 개인 도서관의 형태로 시작된 독서클럽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 도서관과의 차이점은 (도서관) 사서는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독서클럽 회원은 책을 읽고 나서 타인에게 빌려줘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독서 한 후 타인이 다시 독서하는 것은 마치 세포 분열, 나아가 지식의 유성생식과 같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다른 느낌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DNA를 갖춘 생명이 탄생하는 이벤트에 비유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독서클럽은 한 가지 책을 정해 모든 이가 동시에 읽는 그룹 스터디가 될 수 없다. 전체주의적 운영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책을 빌려주는 회원과 빌린 회원 간의 관계는 구전처럼 1:1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회원들은 독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이를테면 각자 대여해준 독서의 기간은 정해진 바 없다. 이미 읽은 책을 빌려주었기에 대여기간의 개념은 불필요하다. 진정한 공유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공유경제는 렌탈 수수료가 아니라 책을 반납 후 독후감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하는 것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고대의 마을을 돌아다니던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독서클럽은 그 내밀한 부활을 의미한다.

위의 이유로 인해 독서클럽 운영에는 크게 비용이 들지 않는다. 회원 각자는 자신만의 서재를 통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서이며, 대체로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기 마련이다. 혹여 신규 서적 입고를 위해 회원이 책값을 지불한다 하더라도 그 책을 대여하는 회원이 늘어날수록 1인당 구매비용은 감소하게 된다. 한편 회원들 간에 책의 소유권 개념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대여기간이 따로 정해진 바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제1원칙인 소유권을 초월할 수 있는 발칙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독서클럽의 장소는 형식적으로 회사 사무실의 회의실이지만 실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라는 주된 행위는 장소를 초월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책에 대한 두 사람 간 담화는 장소를 초월하여 온라인이든, 어느 곳에서든 발생 가능하다. 따라서 정기 모임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는 독서클럽이 탄생하였다. 사족을 붙이자면 독서는 가장 반시대적인 행동 양식 아닐까? 우리는 수천 년 전 위대한 지성의 목소리를 모국어의 내적인 음성으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독서를 통해서만 사실상 유일하게 누릴 수 있다.


독서클럽의 원래 명칭이 리좀(rhizome)인 이유도 위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리좀은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에서 나온 개념으로 수평적이고 가변적인, 이른바 유목적인 체계를 의미한다. 우리의 독서클럽은 뿌리와 같이 연결되어 탈영토화된 집단이다. 우리 독서클럽의 멤버는 비록 현재까지는 회사 동료로 한정되어 있지만, 오히려 독서의 장르는 정하지 않는다. 회원들은 자신이 최근에 읽은 책을 대여해주기 마련이다. 회원 각자가 영향 받은 최근 생각의 근원을 선물해주는 경험을 편협한 장르에 국한된다면 그 즐거움이 감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서클럽의 회원으로 독서의 새로운 즐거움이 더해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책을 읽는 행위가 사적인 독서의 계보학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다시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행위로 변환된다. 이는 회원 간 책을 읽어야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어쩌면 지난 날 금지되었던 체제전복적인 무신론, 무정부주의 또는 공산주의 선전물을 나눠주는 인텔리겐치아의 지적 희열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알게 된 지적인 신비주의 체험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은 이 독서클럽의 지속성을 높이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은 명상 내지 수행과 같이 고독한 경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책의 텍스트를 공유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저자의 이야기를 매개로 독자로서 합일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는 스피노자의 지복처럼 독서를 통해 회원들은 지적인 영원성을 획득한다.

독서는 130억 년 전 별빛을 거대한 천문 망원경을 설치하고 뒤늦게 발견하는 과학자와 같다. 우리는 저자의 생각을 책을 열기 전까지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의 호기심, 상상력, 수많은 감정들, 다양한 사고의 체계 등 모든 것을 책장을 넘기며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 독서클럽 회원은 부자가 되는 길을 찾기보다는, 소원을 들어달라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디오게네스처럼 부자를 초월하는 철학자가 될 가능성을 얻었다. 왜냐하면 어렵사리 책읽기를 마치고 다른 회원에게 책을 전해줄 때 무소유의 기쁨은 어떤 값비싼 물건과도 등가교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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