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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May 26. 2023

파이어플라이 레인, 넷플릭스

(스포일러 주의)


성공한 방송인 셀럽 털리 하트, 전직 방송국 직원인 케이트 멀라키의 일생일대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로 동명의 원작 소설이 존재한다.


등장인물들이 실제 인물이라면 이제는 60대를 살아갈 이들의 청춘, 중년과 장년의 삶이 무제한 플래시백 형식으로 표현된 드라마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내러티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 방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력적인 전개 방식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와중에 후회나 기억이 없었던 때가 있던가? 다만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른다는 착각 때문에 과거와 거듭 조우하는 우리가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절친인 이 둘을 제외하고 주변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간다. 한때 그들의 빈자리를 상상할 수 없었던 친구, 가족이고 연인이었던 이들은 죽거나 헤어지거나 직장 문제로 이사를 가서 더 이상 볼 수 없다.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시즌 2 말미에 케이트의 자녀로 인해 벌어진 사건사고에 따른 갈등으로 1년간 냉전이 지속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역시 자녀를 최우선으로 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위기' 중 하나이다.


그러나 케이트의 암 투병을 계기로 이들의 우정은 극적으로 봉합된다. 사실 나는 이런 클리셰(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싫다. 등장인물의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로 갈등이 갑자기 해결되는 것 말이다. 실제의 경우 이렇게 틀어진 우정은 아마도 그렇게 사그라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베스트셀러)는 시청자(작가)의 기대에 대해 철저하게 부합한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 작가주의라고 디스 당할 테니 말이다.


이러한 진부함은 차지하더라도 케이트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 가족과 담담히 이별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은 아름답다. 남편 조니가 집안일을 전담하고 성심껏 챙기고, 절친인 털리가 대체요법을 찾아 발버둥 칠 때 케이트는 이제 놓아주길(let go) 바란다. 특히 장례식 준비 리스트를 남편에게 이야기해 줄 때 스토이시즘에서 말한 내면의 평화가 떠올랐다. 


진부하지만 사랑스러운 이들의 30년간의 동행을 따라가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보길 바란다. 성공학이 범람하는 시대에 인생을 거듭 반추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시즌이 끝나고 추천작 보기 팝업이 뜰 때쯤 내 삶을 기억해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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