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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an 25. 2023

헬스장

헬스장, 영어로는 짐(gym)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내가 20대부터 다녔던 취미활동의 공간이다. 어렸을 때는 운동을 싫어해서 체육시간에 책을 읽었는데, 대학생이 되면서 외모에 뒤늦은 관심을 가지면서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헬스장은 친밀함이 필요 없는 공간이다. 오히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Nighthawks, 1942>처럼 고독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바에서 혼자 술이나 커피를 홀짝이듯이 홀연히 헬스장에 와서 운동을 하다 가면 그만이다. 바텐더(헬스 트레이너)가 말을 걸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남자 회원이라면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영화 <파이트클럽, 1999>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헬스 하는 놈들이 한심했다. 캘빈클라인의 노예들. 꼭 저래야만 남잔가? 자기계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해."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맨박스(Man Box)*가 일견 약해 보일 수 있다. 남자가 스키니진이나 핑크색 셔츠를 입는다고 동성애자로 간주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외모적인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하여 맨 박스가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한국은 남성에게만 부과하는 병역의 의무, 연애 및 결혼에서 과도하게 남성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은 전 세계적으로 큰 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오히려 헬스를 하는 것은 남성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연장선상으로 읽힐 수 있다.

* 미국에서 활동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토니 포터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한 용어로  남성이 남성다울 것을 강요당하는 것을 의미함



비슷한 사례로 미시마 유키오를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키가 작고 병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작가는 천재적인 글재주에도 불구하고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어쨌든 그는 늦은 나이에 헬스에 입문하여 자신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때늦은 일본제국 부활을 외친 그의 삶은 결국 비참한 최후로 끝나는데 그의 근력과 함께 자의식을 동시에 높인 헬스가 일조했는지 모른다. 


나 역시 로니 콜먼이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같은 멋진 미스터 올림피아의 근육을 동경하며 시작했으니,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근(筋) 수저인 로니와 달리 아널드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공주라고 불릴 정도로 남성성에 대한 열등감이 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게 헬스였다. 나와 아널드의 운동 퍼포먼스 차이는 너무나 크지만, 동기는 비슷했던 것 같다.


여자들은 다이어트에 몸을 지속적으로 혹사하거나 얼굴 등 성형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만큼 훨씬 외모에  강박이 심한 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여자다움에 대한 사회적인 압력이 크긴 하겠으나 사실은 외모가 우월하면 얻는 것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는 성적 매력이 높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사회적 지위나 자산을 얻지 못하면 삶에 있어 그것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짝을 선택하는 이유가 본능적으로 남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텐데 아이러니하게  헬스장에는 남자 회원이 통상 더 많은 편이다. 근력 운동 자체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커서일 것이다. 덧붙여 기구가 가진 기본 무게(이를테면 빈 봉 무게가 20kg)로 인한 제약 요소가 커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좀 더 적합한 운동 환경이다. 따라서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코어 운동에 집중하는 곳에는 거꾸로 여성 회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요즘 들어 여성 회원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레깅스와 브라탑을 입고 자신의 성적 매력을 뽐내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러한 노출에 대한 욕망을 해소하는데 적합한 공간으로 헬스장이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자들에게 왜 레깅스를 입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운동할 때 달라붙는 옷을 안 입으면 오히려 옷이 올라가서 더 민망해진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보디 프로필(body profile)을 찍기 위해 헬스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이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것의 연장선 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결국 남녀 불문하고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온라인상 불특정 다수에게 어필하기 위해 헬스장에 다니는 것이다. 보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헬스장에 고용된 트레이너로부터  PT(personal training)를 받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헬스장 입장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욕망으로 인한 선순환 구조가 지속적인 수입을 가져다주고 있다. 



통상적으로 트레이너의 성별은 남성이 훨씬 많다. 남성 트레이너들 중에 외모가 뛰어나다면 다른 트레이너보다 PT 계약을 맺은 회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운동을 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 회원들의 만족도는 높아 보인다. 여성 트레이너 역시 PT를 하는 것은 물론이나, 아무래도 주 고객인 남자보다는 여성 회원을 대상으로 가르치거나, 초보인 남자 회원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무엇보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몸매가 부각되는 레깅스 차림의 트레이닝복을 상시 착용하고 있어 남성 회원(혹은 레즈비언 성향인 여성 회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헬스장은 이전에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하던 관음과 노출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나아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가 부각되는  운동하는 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여 자신의 SNS에 종종 업로드한다. 자신은 자기 관리를 잘하며 성적 매력이 있다는 증명을 강박적으로 계속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헬스는 타인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나르시시즘에서 시작되었다. 카메라의 프레임이나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대상은 나이다. 그리고 헬스장은 나르키소스(나르시스)의 얼굴을 비추는 샘물이다. 타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부모를 포함한 누구보다 나를 가장 사랑한다. 나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노력이 필요한 영역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타인을 욕망하기 때문에 보디빌더, 유명 가수나 배우가 미디어를 통해 노출한 멋진 근육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만일 내 모습이 그들과 많이 다르면 열등감이 생기며 헬스장은 그들과 갭을 해소하는 구원의 성소가 된다. 물론 운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비슷해질 것이라는 환상이 실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운동을 해보면 좌절하는 시점이 반드시 찾아온다. 꾸준히 운동을 하여도 실력이나 외적인 매력이 나아지지 않는 정체기에 사람들은 헬스장에 출입을 끊을 수도 있고, 다른 운동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체기를 인슐린, 성장호르몬이나 스테로이드 같은 불법 약물을 통해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약물을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근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지지만, 신체의 항상성 원칙에 위배되어 복용을 중단하면 신체 균형이 급격하게 붕괴된다. 따라서 마약처럼 복용을 중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작용이 크다.


헬스장은 아마 어떤 운동 종목보다 가입과 탈퇴가 쉽다. 또한 운동은 PT를 받지 않는 한 개인 단위로 진행하기에 회원 간 별다른 대화도 없어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헬스라는 운동이 가진 탐미적인 속성으로 인해 수많은 욕망과 은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헬스라는 운동이 습관이 되기 전에는 그다지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은 몸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위험은 시작된다. 신체가 가진 운동수행의 한계는 나이와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롤 모델로 삼기에는 위험부담이 큰 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크게 사람이 망가질 확률은 낮은 편이다. (물론 조선시대 집현전 학자들은 실제로 공부를 하다 과로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기 위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를 오남용 한다면 중독 문제가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헬스 역시 자신의 타고난 신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계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젊은 남자로서 3 대 500*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헬스장에 없다. 설령 마음속으로 있다 하더라도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놀이문화가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헬스장에 주기적으로 가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비록 헬스장에서 자기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SNS에 '좋아요'를 받으려고 사진을 올리거나 이성에게 성적 어필을 위한 것이어도 상관없다. 인간은 유전자(DNA)를 운반하는 커다란 운반체인데, 유전자 복사 능력을 향상하는 최적의 가성비를 가진 공간인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 아닌가? (끝)

* 벤치프레스, 데 드리프트, 스쾃을 한 번에(1RM)  들 수 있는 최고 중량 합계가 50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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