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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노예 배드민턴 세계 1위, 안세영

그랜드슬램 달성 후에도 빨래 노예는 계속 된다.

by pathemata mathemata

우리나라에는 빨래 노예 배드민턴 세계 1위 랭커인 안세영이 있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후배는 빨래를 하는 전통을 가져 선배 빨래를 도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장유유서를 따르는 유교 조선의 후예답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대한민국의 시대이다. 국가대표 선수촌은 치외법권이란 말인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 같은 폐습이 있다면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어 향후 악습이 지속된다면, 국가대표 운영 대신 미국 등 선진국의 생활스포츠 방식으로 전환도 고려할만 하다.


지난 2017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후 7년 내내 대표팀의 잡일을 도맡았다는 주장인데, 선배들 라켓줄 교체를 비롯해서 방청소와 선배들의 빨래를 대신하는 것까지 일과 후에 휴식이 필요한 시간에도 이러한 잡무가 지속됐다는 겁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개선 요구에 대표팀 코치진의 반응은 황당했는데요, "오래된 관습이기 때문에 당장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 [자막뉴스] 선배 빨래·청소 대신했다는 안세영... 코치진, "오랜 관습이라...", (2024.8.16, YTN)


배드민턴처럼 코트 안에서 하는 유사한 운동으로는 테니스, 탁구가 있다. 그렇다면 바꿔서 비유를 해보자. 선배 페더러 빨래하는 후배 알카라스, 선배 나달 방 청소하는 후배 조코비치, 어떤가?


안세영은 22세 나이에 배드민턴 사상 28년 만에 금메달을 땄다. 이로써 2024 파리 올림픽을 포함하여 슈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2023년부터 배드민턴 세계 랭킹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배드민턴협회는 (대한체육회 추산 국내 400만 명이 즐기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안세영은 '손흥민 급도 아니면서 스타 대접을 받고 싶으냐'라는 식의 모욕을 가하고 있다.


물론 스포츠는 자본주의, 대중의 욕망을 따른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피겨스케이팅에 뛰어난 실력에 얼굴과 몸매가 되는 김연아가 등장했기에 순식간에 인기 종목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논리는 안세영에게 매력도 없는 주제에 돈만 밝히는 물신주의의 노예라고 비난하는 셈이다.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의 상당히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요구사항(선수 부상 관리, 선수 훈련 지원, 협회의 의사결정 체계 및 대회 출전 등의 문제점)에 대해 배가 부르다, 배은망덕하다는 식으로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특히 안세영 개인의 탐욕인 것처럼 선수 월급 제한에 대해 상금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충분하다고 언론 플레이도 한다. 그러나 이는 월급과 상여금의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매달 나오는 월급과 달리 매번 순위권 안에 들지 못하면 받지 못하는 것이 상금이다. 타이거 우즈가 매번 PGA 대회에 우승했다고 다음 대회에 우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안세영은 연봉에 관해서도 부당함을 토로했다. 현행 배드민턴협회 관리 규정을 보면 ‘고졸신인은 7년간 계약을 유지해야 하고 계약금도 최고 1억을 초과할 수 없다. 고졸선수의 첫 해 연봉은 최고 5천만 원으로 제한되며 연봉의 연간 7% 이상 인상도 금지된다’고 돼 있다. - "개인 스폰서 풀어달라"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요구, 배드민턴협회는 들어줄까, (2024.8.12, 조선일보)


또한 협회는 요넥스와 스폰서를 맺은 것은 후배 선수 양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자체 기부금 한 푼 없이 지금까지 정부 지원만 받아온 것에 대한 반론일 수 없다. 문체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보조금 71억 2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회계감사의 문제겠지만 결코 일개 기업 스폰서가 끊긴다고 후진 양성이 불가하진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지 않는가?




무엇보다 선수들은 나이에 따라 기량이 퇴화하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를 겪는다. 영원히 1위일 수는 없다. 미국의 회귀 모형 통계 결과에 따르면 연령별로 선수의 최전성기는 20대에 집중된다. 개인적 편차가 있겠지만 확률적으로 30대 이후에는 급격하게 기량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


선수의 연령별 최전성기, link.springer.com


선수들에게 나이는 생명이다. 2012년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스포츠 스타 100명 중 36명은 무직자로 조사되었다. 취업자 중에서도 30% 남짓만이 선수 활동 분야에 종사할 뿐이다.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 소속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20일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 스포츠 스타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선수 100명 중 36명꼴로 무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은퇴선수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은퇴 선수 중 무직자는 35.9%였다. 취업자 중에도 선수 활동과 관련된 분야에서 종사하는 비율은 31.2%에 불과했다. 은퇴선수의 무직자 비율은 테니스가 50%(54명 중 27명)로 가장 높았고, ‘국기’인 태권도도 49.6%(250명 중 124명)에 달했다. 반면 탁구의 무직자 비율은 13.6%로 55개 종목 중 가장 낮았다. 요트 14.3%, 레슬링 17.5%, 육상 19.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선수 생명이 가장 긴 종목은 배드민턴으로 평균 14.4년간 선수로 활약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골프의 선수 ‘평균수명’은 4.7년으로 전체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짧았다. - ‘선수 수명 4.7년’ 가장 낮은 종목은?, (2013.10.20, 경향신문)


과연 안세영 선수에게 보상이 지금도 충분하다고 보이는가? 비인기 운동 종목이며 (선수의) 개인적 매력이 떨어지면 그 분야의 세계 최고 선수라도 비참한 대우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운동선수들에게는 30대 이후에는 사실상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삶을 강요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손흥민도, 메시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은퇴해서 부자로 살아갈 확률이 높은 이들보다 인기가 적고 연봉이 낮기 때문에 소득창출의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 기회조차 계속 협회에서 뺏어간다면, 선배의 빨래를 강요한다면 저출산 시대에 제2의 안세영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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