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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23시간 30분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by 유세웅

내게는 5년째 연애 중인 여자 친구가 있다. 누군가 물어볼 때 이렇게 말하면 보통 주변의 반응은 비슷하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오래 만났어요?'


사실 난 남자 친구로서 0점인 직업과 상황을 가지고 있다.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고, 교대 근무를 하고 있으며 근무 중에는 연락도 잘 안된다. 그리고 응급상황이 발생하는 날에는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만날 수 있을 때, 연락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잘 대해주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통화를 할 때는 종종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는데 상황은 대게 비슷하다. 예를 들면 내 상황은 근무 시간 내내 물도 못 먹고 밥도 못 먹은 상태로 일한채 녹초가 된 상태로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한다. 그때밖에 시간이 없으므로. 여자 친구 입장에서는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남자 친구와 나누고 싶기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상태다. 경청하고 공감하며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체력적, 심적으로 한계가 올 때는 그러기가 쉽지 않고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다.


고민이 많이 되어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던 중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주 보지도 못하고 연락도 잘 안되는데 하루에 30분을 여자 친구에게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 그 30분 동안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하든, 자기 얘기만 하든, 속상한 이야기를 하든, 험담을 하든 상관없이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들어주고 편이 되어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품고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해봤다. 사실 상황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가 되어 통화시간이 더 애틋하고 즐거워지는 걸 경험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경청하다 보면 여자 친구가 먼저 '너무 내 얘기만 많이 해서 미안해. 오빠의 하루는 어땠어?'라며 물어봐준다. 그때 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여자 친구에 비해 하루를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말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통화의 말미에는 늘 고맙다며 마무리되는데 사실 되돌아보면 내가 한 건 그저 공감을 표하며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와 진솔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여자 친구가 신기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길래 이유를 물었다.


- 어떻게 연애를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지고 사랑하는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 무뚝뚝한 내 마음과 입에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해. 진짜 고마워 오빠.


그 말을 듣는데 올해, 아니 인생 전체를 두고 들어 본 말 중에 손꼽을 정도로 행복감을 느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존재가 된다는 건 가슴 뛰고 소중하며 값진 일임을 마음에 새긴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아껴주는 사랑이 더 커져서 내 주변의 이웃들도 더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하루는 23시간 30분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상황이 바쁘고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더라도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30분의 시간을 내는 걸 포기하지 않고 싶다. 내가 기꺼이 시간을 내는 30분은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줄 것이며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기억하고 지키게 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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