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00일
한창 수능을 준비하던 수험생일 때 영어공부를 하다가 독해 지문에서 막히는 문장이 있었다. 영어 선생님도 제자들이 막힐 거라는 걸 예상하셨다는 듯이 칠판에 문장을 쓰셨다.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
'당신을 사랑해요.' 까지는 막힘없이 해석이 됐다. 그러나 그 뒤의 문장은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해석하진 못했다. 영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요.'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수능을 치르고 이듬해에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라는 곡이 발매가 되었는데 한층 더 와 닿게 들렸었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커플이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다. 만남 가운데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갈등이 생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고 크게 다투기도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썼던 방법은 눈은 가리고 입은 닫고 귀는 여는 방법이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편견과 선입견의 렌즈는 가리고 판단과 심판, 탓하는 입은 닫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귀는 여는 방법이다.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기 위해 마음을 열고 바라봤다. 경청하며 상대방의 역사와, 기쁨과 슬픔,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문제를 해결하고 공정하게 심판하는 포청천을 원했던 것이 아니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해주는 사람 곁에서 사랑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과정 가운데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양손 가득 큰 창을 쥔 채 타인에게 겨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 곁에 다가간다는 것은 내가 양손 가득 쥐고 있는 큰 창을 내려놓고 무방비 상태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볼만한 이유는 상대방이 경계심을 풀고 손에 쥐고 있던 큰 창 대신 내 손을 쥐는 가슴 벅찬 순간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숱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큰 창이 아니라 당신과 잡은 손 꽉 쥐고 이겨내 보겠다는 그 마음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에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지 못하고 다투게 되는 순간을 분명 마주하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다투는 이유도 상대방을 더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함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앞에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과 행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