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를 써야 하는 이유
내 마음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건 손편지를 받았을 때다. 어릴 때도, 학창 시절에도, 군인일 때도, 간호사로 살아가는 지금도 그렇다. 손으로 글자를 꾹꾹 눌러 담은 손편지를 받을 때면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며 편지지를 고르고, 어떤 말을 쓸까 고민하며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 것을 알기에 행복함을 너머 사랑을 느낀다.
모든 손편지들을 감사히 여기고 정성스레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주고 받은 편지 중에 인상 깊었던 편지는 군인일 때 보내주신 엄마의 손편지와, 막연하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함께 사랑을 가꾸고 있는 여자 친구의 손편지다.
유난히 추웠고 불안했던 20대 초반의 겨울, 나는 훈련소에서 훈련을 잘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새로운 환경으로 가게 되었다. 낯설고, 많은 부분이 통제되어 자유가 줄어든 곳에서 공중전화로 전화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은 힘듦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수화기 너머로 '괜찮니?'라고 물어보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에 또 전화드릴게요.'라고 대답한 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꺼억, 꺼억 소리 내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청년으로, 자립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괜찮다고 말을 했는데 사실은 하나도 안 괜찮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엄마로부터 손편지가 왔다. 근무를 마친 후, 생활관에 있던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갔다. 엄마는 하나도 안 괜찮은 나의 모습을 목소리만 들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 나의 존재를 귀하게 여겨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엄마가 써주신 손편지를 읽어나가며 화장실 한편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엄마는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매주 손편지를 보내주셨다. 손편지를 통해 느껴지는 사랑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지금도 보관함에 쌓여있는 엄마의 편지를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역을 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당시 나는 머리도 짧고, 공부하는 것도 까먹었고, 뭐 하나 이룬 것도 없었기에 아름답고, 가치관도 바르고, 공부도 잘하는 그녀 앞에서 작아졌다. 그러나 서로 알아갈수록 이 사람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을 해서 거절당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다시 고백을 받아 사귀게 되었고, 나의 첫 여자 친구이자 마지막 여자 친구일 그녀와 6년째 연애 중이다.
누구나 상처를 받기 싫어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근데 나는 연애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받은 상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여자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여자 친구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비슷해서 공감되었고 함께 울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극복한 과정은 여자 친구에게 그 어떤 위로보다 크게 다가갔다. 아마 신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누구보다 더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라고 내게 상처를 허락하신 것 같았다.
여자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엄마의 손편지가 떠올랐다. 내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나를 일으켜준 손편지가 여자 친구에게도 똑같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일주일마다, 10일마다, 때론 불규칙하게 진심이 담긴 손편지를 건넸다. 지금까지도.
6년째 만나고 있는 지금, 여자 친구의 어두운 면은 점점 사라져 가고 이제는 표현도 곧잘 하며 날마다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되어가는 걸 목격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던 여자 친구가 오빠랑만 결혼할 거야라고 말할 때면 사랑과 진심을 담아 손편지를 썼던 지난 시간들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돌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엄마로부터 받았던 손편지는 나로 하여금 여자 친구에게도 손편지를 쓰게 만들어 한 사람을 회복시키고 사랑을 느끼게 했다. 손편지의 선순환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진심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손편지 쓰는 걸 미루지 않을 것이다. 손편지에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