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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Sep 02. 2020

돌봄이 필요한 시간

Care(아서 클라인만, 시공사)를 읽고

돌봄이라는 가치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삶으로 풀어낸 저자의 경험이 감동적이다. 병원의 생리를 잘 아는 의사이면서도 보호자로서 병원에 갔을 때 마주했던 불편함은 무언가가 심각하게 결여되어있음을 느끼게 했다.

    

병원 진료의 대부분은 기다리는 일, 언제나 대기하는 일이었다. 환자와 가족은 대기실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그러면서 그들의 불안과 짜증은 당연히 커진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의사와 몇 마디 나누기 위해 기다리고, 의사에게 다음 단계에 대한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린다. 대부분은 답을 듣기 위해 기다린다. 잔인한 사이클임을 알면서도 여기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들에게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 우리가 적응하고 일상을 꾸리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을 해야 할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의 공포나 개인적인 사정에는 무심해 보이는 전문가들을 연이어 만나다 보면 어리둥절해지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환자의 가족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다. (23p)     


돌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에 비해 상태가 호전되는 성과가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에 돌보는 사람은 좌절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화가 나기도 한다. 환자의 죽음을 많이 마주하게 되는 부서의 의료진에게서 번아웃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는 한 인간에게 희생하고 헌신하겠다는 태도, 둘째는 돌봄의 관계가 둘 모두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점이다.


돌봄은 나를 더 강한 사람으로 느끼게 했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더 잘 맺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언제나 야망을 좇으며 오직 내 일에서만 보람을 찾으려 하던 이전의 나에서 벗어났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고 하루하루의 소소한 일상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배웠다. 결국 인생이란 이것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나는 생각보다 막중한 돌봄의 짐을 지게 되었고,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뿌리째 바꾸었다. (65p)     


책 중간중간 병원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겪는 갈등이 나온다. 한 레지던트는 당직 내내 콜에 시달리고 겨우 눈을 붙인 채 시달리고 있었다. 근데 새벽에 한 환자가 말을 들어달라고 요청하자 미안하다며 다른 일을 하기 위해 20미터 정도 뛰어갔다. 그러다 문득 불안해하는 환자들의 말을 들어주고 대화해주고 싶어서 의대에 왔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30분 동안 환자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일이 밀려서 그날 밤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고 병원을 빠져나가 집에 도착한 레지던트는 무너졌다. 삭막한 현실 앞에서 엉엉 울었다. '친절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으면서 살인적인 레지던트 기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자는 아내를 돌보면서 아내가 자신에게 제공했던 돌봄에 대해 깨닫는다. 돌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글 쓰고 가르쳐 오면서도 저자 자신은 가족, 자신을 돌보는 일에 무지했다. 침대를 정리하지도, 공과금을 내지도, 집안을 살피지도 않았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사용법도 몰랐다. 모든 학문적, 전문적 여정을 열정과 진심으로 추구할 수 있었던 건 아내 조앤이 주변의 모든 것이 수월하게 흘러가도록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돌봄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간호사의 입장에서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중요성을 강조한 말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돌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저자의 삶이 감동적이었다. 오늘날 병원에서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서 어쩌면 인간을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주고,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속 불안, 두려움, 상처를 품어주는 일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돈이 되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진료시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환자와 관계를 맺고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배정되어 있는 간호사 당 환자 수 때문에 그런 걸까. 문제를 직시했다면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돌봄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돌봄의 가치가 더 중시되고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 날이 오면 의료진들은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환자들을 돌보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환자 및 보호자는 돌봄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위로받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회복되는 경험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단 오늘부터는 이불을 개고, 청소, 빨래, 설거지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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