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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Mar 08. 2020

대천덕 신부의 하나님 나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성공회 선교사이자 사제였던 대천덕 신부님은 한국에 파송되어 사회 문제를 고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일평생 사셨다. 책에서 접하는 신부님의 글을 통해 토지문제, 가난 문제,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문제 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했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신학에도 아편과 같은 부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기쁨을 주고 병을 고쳐주어 소속감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이나 십자가를 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나, 나, 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할렐루야!" 소리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나의 제자가 되려면 너의 십자가를 지라!"라고 하십니다. 내가 약한 사람을 위해 싸울 때 세력 있고 강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오해를 받고 핍박을 당하며 어려운 문제가 생기게 되겠지만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41p)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비록 지금 내게 고통이 없더라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나도 져야 하며, 그 고통에 동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4:13)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는 자는 그 영광에도 동참할 수 없습니다. (41-42p)


점점 화려해지고, 새 건물이 지어지고, 이익과 효율을 추구하는 도시의 이면에 굶주리고, 혜택 받지 못하고, 차별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신부님은 주목했다.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복 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삶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기쁜 소식'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라는 말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말입니다. 옛날 미국에는 "No Cross, No Grwon"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것을 잘 모릅니다. 면류관이 있다고 강조는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값을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44p)


토지의 문제를 다루면서 토지공개념에 대한 성경적인 해결책도 제시하는데 여러 이익이 걸려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는 자신의 친구 혹은 지인을 도와주려는 국회의원 때문에 예외 항목을 만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세법에 관한 항목이 무려 4만 페이지나 된다고 한다. 성경적인 원리를 적용해서 세법을 만들었다면 수십 페이지로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신부님은 일갈한다.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의와 자비의 개념을 다루고 있는데 보통 정치 문제는 "빈곤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다. 의는 법을 가리키고 자비는 교회의 역할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법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교인들에게 있다고 했다. 각 마을에서 3년마다 십일조를 모아서 그 마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나와있다(신 14:28-29). 운영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 일을 하게 되면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먼저 현황을 조사하는 사회복지 전문가가 나와서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대학교 졸업한 사람도 안 됩니다. 대학원 나온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대상자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 연구하고, 긴 보고서를 써야 합니다. 이 보고서는 계장에게 올라가고 그다음은 과장에게, 부장에게, 그런 순으로 해서 마침내 장관에게까지 올라가요. 이들은 모두 월급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확실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추측컨대 가난한 사람에게 천 원을 주기 위해 월급쟁이들이 받는 돈은 아마 만 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도 이만큼 많은 관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결국 세금을 거두어서 이 사람 월급 주고 저 사람 월급 주고 나면 우리가 낸 세금 중에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돈은 10원 정도밖에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천 원을 주면 가난한 사람에게 천 원이 모두 돌아가게 됩니다. 이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법입니다. '자비'는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교회의 책임입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입니다. (110p)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은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 가진 것을 나누고 자발적으로 가난해졌지만 충분한 삶을 사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일을 하지 않고 타인을 착취해서 부를 누리려는 마음 때문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사랑을 떠드는 무심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우리 삶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있으려고 하셨으며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빛을 비추셨던 대천덕 신부님의 존재가 정말 감사하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돕기 위해 법과 공동체의 헌신과 희생이 서로 협력하여 어딘가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이어질 때에야만 비로소 복음은 모두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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