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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Jun 02. 2021

엄마의 마음

아이를 생각하는 모습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인수인계를 위해 이브닝 근무와 나이트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모였을 시간에 한 침대를 두고 구름과 같은 인파가 모였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가봤더니 한 아이를 두고 귀여워서 너도나도 보러 온 광경이었다. 중환자실에서만큼은 그 아이가 어느 아이돌의 인기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행동, 말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사랑해주고 함께 웃어주니 아이 또한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이 외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몸을 뒤집기도 전에, 어떤 단어를 말하기도 전에,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심장 수술을 받는 아이들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프다. 왜 어릴 때부터 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남들은 당연히 코로 숨을 쉬고 있을 때 인공호흡기를 의존한 채 몇 날 며칠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간호사인 내가 바라봐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데,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할까.


내가 기억하는 아이의 첫 모습은 심장을 잘 뛰게 하는 약, 잠을 재우는 약들을 투여한 채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심장과 폐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조심스럽게 경과를 지켜보고 사용하는 약의 투여 속도를 점차 줄여나갔다. 시간이 흘러 아이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을 때, 잠을 재우는 약을 점점 줄여갔다. 그에 따라 곤히 잠들어 있던 아이가 서서히 눈을 떴다. 아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 투명하고 반짝이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아이가 불안해할까 봐 지금 잘 견디고 있다고, 조금만 버티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하는데 먼저 근무했던 동료의 표현에 따르면 아이의 모습을 볼 때 행위예술가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잠을 재우는 약물을 다 끊고 인공호흡기를 성공적으로 제거했긴 했는데, 아직 약의 기운이 남아있는지 많이 졸려해서 똑바로 누웠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발은 침대 난간에 걸치고 팔은 머리 위로 올렸다가 하면서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동료의 묘사만으로도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졌는데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구나 싶을 정도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나서 일정 시간 잠을 참고 숨을 잘 쉬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인공기도를 재 삽관해야 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잠에 취해 계속 눈을 감았다고 했다. 책임 간호사 선생님과 나의 동료는 아이의 잠을 깨우기 위해 계속 말도 걸어보고 등도 두드려주고 물을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기도 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X-ray사진이 괜찮고, 산소 포화도가 잘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한 시름 놓고 아이를 재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정도 다양한 행위예술 공연을 마친 아이는 이제 잠에서 완전히 깨서 산소를 공급하지 않아도 산소포화도가 잘 나오고 숨도 잘 쉬게 되었다. 아이는 사용하는 약물도 대부분 끊고 며칠 뒤면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게 될 예정이었는데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이 많이 심심하니 TV 시청도 하고 부서에 비치되어 있는 아이패드로 유튜브도 시청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의 동료 선생님은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 "같이 그림을 그려볼까?"라며 다른 활동을 유도했는데 아이도 흥미가 있었는지 자신이 안고 있던 베개커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토끼냐고 물었더니 고양이라고 했다.

비록 미취학 아동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실력이 나보다 월등했다. 아이도 맘에 들었는지 마치 애착 인형처럼 베개를 꼭 끌어안으며 미소 지었다. 그날 밤,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는 멋진 동료 선생님께서 사인펜과 스케치북을 손수 준비해서 아이에게 전해주셨다. "유튜브 재밌긴 하지만 자극적인 요소가 많아서 아이 정서에도 좋지 않고 계속 보면 눈도 나빠지니까 차리리 그림을 그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가져왔다는 선생님의 말과 마음에 감동받았다.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고 위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사인펜을 손에 쥐고서 자신과 닮은 예쁜 공주님을,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들을 스케치북에 신나게 그려나갔다. 비록 웃을 일이 잘 없는 병원생활이지만, 아이가 그림을 몰입해서 그리면서 재밌게 놀았다는 기억이 남는다면 이 시간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고 따뜻하게 남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엄마의 마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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