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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Jun 22. 2021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수많은 불행 앞에서

땀에 젖은 유니폼, 헝클어진 머리, 피비린내가 풍기는 환경에서 또 한 명의 죽음을 목격한다. 환자 곁에서 끼니를 거르고 잠을 참고 땀을 흘렸던 시간,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했던 시간만큼 의료진들이 느끼는 슬픔의 깊이와 무게는 비례해서 더 깊고, 무겁다.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상황들을 겪지만, 죽음이라는 녀석은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애초에 쉽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에도, '아직 젊은 나이인데 왜 벌써?' 라며 탄식하기도 하고 '그동안 너무 고생만 하시다가 가시는 건 아닌지.'라며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한 살려는 의지가 확고하고 어떻게든 힘든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환자분의 모습에 반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살릴 수 없었던 상황을 떠올릴 때면 환자분에게 너무 미안하고 이 상황이 너무 애통하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너무 힘드시죠?"


평소에도 심성이 착한 의사 선생님께서 동료에게 말을 건넸다. 환자 곁을 지킨 모두가 비통하고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고 참 속상하기에 의사 선생님께서 침울해 있던 동료의 모습을 공감하고선 마음을 헤아려주셨다. 이어서 진심으로 환자와 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리고 함께하는 한편, 마음을 잘 추스르고 또 다른 환자분들을 살려야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격려해주셨다. 모든 사람들을 살릴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묵묵히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심장을 다루는 부서의 특성상, 정기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는다. 동료의 말로는 자신이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마침 심장과 관련된 중환자실 선생님들이 다수 참석했다고 했다. 강사 선생님도 명단을 보고선 응급상황도 많고 많이 힘들실 것 같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했다. 그리고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말을 덧붙여 주셨는데 동료는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심장이 아픈 사람들을 돌보다 보면 때론 죽음도 자주 마주치고 그 과정 가운데 지치고 무력함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그래도 전 여러분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상황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느 직장인은 주어진 과제를 책임감 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꽉 막힌 상사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질책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해 일터를 지켜야 하는 착잡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을 수도 있다.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때려치우고 싶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속상하고, 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없는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이 우리가 진정 바라는 모습이 아니고, 당장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의미를 발견하는  또한 너무 버거워서   없더라도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며   있는 것들을 해내고 올바른 삶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분명히 힘든 순간 함께하고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게  것이다. 또한 시간이 흘렀을 때, 지난날 경황이 없어서 알지 못했던 시련의 의미를 깨닫고   성숙해져서 타인을 품고 위로해줄  있는 격이 높아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치게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 또한 성장과정 중에 나이에 맞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고, 웃음을 잃었던 적이 있었으며, 훗날 내 아픔이 타인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하는데 필수적이었던 시간이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불행 앞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마음 뺏기지 않기를,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순간순간 진심을 다해 살아가며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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