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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Feb 23. 2019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으로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 : 천천히 평온하게(백춘성 지음, 두란노 출판사)를 읽고 글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이기도 한  Not success, but service는 약 100여 년 전에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간호사이자, 선교사로 한국 땅에 파송되어 온 서서평 선교사님의 머리맡에 있던 문구였다.

 

서서평,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의 일생은 예수님이 알려주신 말씀대로 살아낸 삶으로 점철되는데 그 삶이 흔치 않고 구별되기 때문에 마음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홀로 된 어머니는 서평을 할머니에게 맡겨둔 채 미국으로 떠나셨다.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도 돌아가시게 되었고 어머니가 계신 미국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8년 만에 재회한 모녀는 서로를 알아보고 와락 끌어안아 눈물을 쏟는다. 서서평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어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기도했다. 그러던 중에 “예수를 본받아라!”라는 말씀이 떠오르게 된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장 23절 말씀)

교육, 전도, 환자 치료.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직업으로는 간호사, 영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선교사. 서서평은 바로 이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간호사가 크리스천으로서 보람된 직업이라는 확신을 갖는 데 전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무시했고 우여곡절 끝에 뉴욕 시립병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를 따라 기독교 교회 예배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예배 의식이 가톨릭 교회보다 한결 자유로웠고 왠지 설교도 마음에 들어 계속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하늘나라는 나 자신이나 누군가가 행한 업적에 의해 가는 곳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결국 서서평 선교사님은 기독교로 개종했고 집안 대대로 믿어온 가톨릭교를 배반한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멀어지게 되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큰 슬픔에 빠졌다. 십 년 전에 낡은 옷을 입었다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나,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을 때 보다 더 큰 고통이었고 태어나서 남들처럼 '아버지'를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어머니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나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서서평 선교사님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예수님만은 굳게 의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성경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저축했던 돈으로 뉴욕 시립 성서 사범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지식적으로나 영적으로 놀랍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갈 정규 간호사를 모집하는 곳이 있다고 소식을 들어 찾아간 곳은 미국 남장로교 해외 선교부였다. 1912년 2월 20일, 그녀는 백의천사로 백의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왔다.


누가복음 10장에 강도 만난 사람의 예화가 나온다. 거의 죽은 상태에 처해있는 사람을 보고 그 당시 지위와 권세가 있던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저 보고 피하여 지나칠 때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약을)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돌봐주었다. 간호사이자 선교사였던 서서평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으로 살았다. 우리나라에 와서 광주 제중병원, 군산 구암예수교병원을 거쳐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는데 간호사로서 임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3.1 운동에도 참여하였고 감옥에 갇혀 있는 애국지사들을 방문하여 필요한 물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제중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는 선교 사역뿐만 아니라 지도자 양성학교도 설립하였고 여성 교육과 구국 운동도 했다. 금주 동맹을 만들고 공창 폐지 운동을 전개했으며 늘 생활 개선과 구제 사업을 외쳤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병을 고치고 영혼을 살리신 예수님의 사역을 따를 수 있는 간호사를 한국 여성들이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새장 안의 새처럼 집안에 갇혀 살아가는 한국 여성들을 간호사라는 직업 세계로 끌어낸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당시 여성을 천시하는 유교 사상과 간호사를 천한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생각들을 극복하는 게 최우선으로 보였다. 그래서 한 방법으로 국제간호협회에 한국간호협회를 가입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뤄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1928년 5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한국간호협회 제6회 총회 석상에서 설교를 했다. 사도행전 20장 17-35절 말씀을 본문으로 한 '바울의 모본'이라는 제목의 설교였는데 인상 깊은 두 가지 주제에 대해 나누고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나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길.


첫째, 모든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라(20절)

바울은 실력이 있었다. 먼저 신앙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실력이다. 남에게 복음을 나누어주려면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나 자신의 신앙을 길러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요즘 말로 하는 전도는 사람들이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 삶에서 행동으로 구별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평소 나의 삶이 전혀 모범이 되지 않고 막상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그때에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내 말과 행동에 무슨 힘이 있을까 생각한다. 또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간호사로서 갖춰야 하는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실력을 갖춰야 함을 느낀다. 아무리 환자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마음이 크더라도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공부를 게을리한다면 결국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가 발생하고 그건 환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에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내가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정확한 지식과 행위로 환자를 대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내 앞의 환자분들을 친절과 위로와 공감으로 대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고난을 각오하라(22-24절)

우리는 병들고 약한 자들을 상대하는 직업입니다. 물론 예수님 사랑에 바탕을 둔 적십자의 박애 정신으로 육신의 병 치료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으로 소망을 안겨주어 영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직업은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환자가 우선이요, 나 자신은 전적으로 무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이 따릅니다. 그 고난을 각오하고 나선 것이 우리 간호사들입니다.


내게 만약 신앙이 없었다면? 나의 일상은 짜증과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사실 신앙이 있어도 전쟁터 같은 병원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짜증 나고 답답한 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인간적인 한계를 느낄 때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그 사랑을 떠올린다. 자신을 배반하고 끊임없이 권위에 도전하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인간이 뭐가 좋다고 예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왜 그러셨을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사랑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사랑 앞에 오늘도 나는 작아지고 부끄럽지만 감히 그 사랑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나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삶에서 환자분들을 위해 나 자신을 무시하고 그들의 요구를 계속해서 들어주는 것은 힘이 많이 들고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으로 내 앞의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를.


서서평 선교사님이 한국 땅에 와서 살아낸 삶을 보면 과연 이게 사람이 살아낼 수 있는 삶인가 생각이 든다. 예수님처럼 아이들을 좋아했으며 부모를 잃고선 헐벗고 굶주리는 고아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 14명을 입양해서 길렀다. 그리고 과부와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으며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힘쓰기도 했는데 당시 이름이 없던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자 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말 바보처럼 살았다. 


자신에게는 인색했는데 휴가라고는 간 적이 없었으며 편안함과 쾌락을 누리지 않았으며 짧은 시간도 최대한 늘려 쓰기 위해 노력했고 전도 여행을 할 때도 선교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제주도나 추자도로 갔다. 


타인을 위해 낭비했는데 월급을 받으면 절반은 교회에, 학교 경영비와 학생들 장학금에 보탰으며 나머지 남는 돈은 눈앞에 보이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기를 위해 쓰는 돈이 전혀 없었으므로 늘 옷차림이 허술했고 구두 한 켤레조차 없었다.


복음 전도를 위해 부지런했는데 질병 치료보다는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생 관념과 전염병에 대한 강연도 많이 하러 다니고 각종 위생 관련 서적도 많이 배포했다. 의학이나 간호학에 대해서만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간호협회와 학교를 설립한 것도 요청의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을 돕고자 자진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창녀나 윤락 여성을 구출하고 금주 운동을 벌였을 때도 윤락가와 유흥가와 시장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그 많은 구제 사업이나 장학 사업을 다 그렇게 진행하였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괄시하거나 약한 자를 학대해서는 안된다.'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항상 가난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우대했다. 얻으러 올 때에만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싣고 찾아가서 나눠주었다.


시간이 흘러 서서평 선교사님은 병을 앓게 된다. 자신을 무력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아픔 앞에서 서서평 선교사님은 아픔을 회개의 기회로 여긴다.


"하나님! 저는 성질이 급하여 많은 형제자매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나만 잘 믿는 줄 알고 자만심이 강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함부로 정죄했습니다. 간호사로 있으면서 인내심이 없다고 책망하여 환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도 있습니다. 아버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지장 없도록 주님의 피로 이 죄인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죄 씻음을 받을 기회 주심에 감사
주님의 고난을 만 분의 하나라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
완전한 천국 백성으로 삼기 위해 연단 주신 것을 감사
간호사로서 남의 아픔에 무감각했던 잘못을 깨닫게 되어서 감사
한국 백성이 베풀어준 사랑에 감사
몸을 연구 자료로 제공할 수 있는 명예에 감사


그녀가 죽을 때 남기고 간 전 재산은 담요 반장, 쌀 두 홉과 7 전이 전부였다. 미국 시민권자로 또 간호사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상황들을 포기한 채 서서평 선교사님은 낯선 한국 땅에 와서 다 주고 떠났다. 삶에서 전해져 오는 진한 향기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쟁취하고 또 할 수 있으면 더 많이 가지라고 부추기는 시대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고 삶으로 보여주신 서서평 선교사님의 생애는 역설적으로 다가오며 큰 울림을 남긴다.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그리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낸 서서평 선교사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이웃이며 참 제자라고 생각한다. 존경스럽다. 감히 그분처럼 살아낼 자신은 없지만 그 삶의 그림자라도 따라갈 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길 다짐해본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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