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기 추천 포상제는 도덕적인가

by polisopher


자신의 공적을 스스로 알려서 포상을 받는 제도, 자기 추천 포상제는 도덕적인가

“한 마디로 자기 자랑을 통해 포상을 받는 제도입니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발굴해서 칭찬한다는 좋은 취지를 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더군요. 선생은 어떻게 보셨나요?”


“참으로 기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한편으로는 희박하나마 작은 희망의 불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 추천이라는 제도가 등장할 정도면 조직의 인사나 포상 등이 어떻게 운영되어왔는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이는 아예 만성적 불공정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포상제도가 겉으로 드러난 자들 위주였다는 방증이지요.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의도야 바람직하지만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척 부도덕적입니다.


튀지 않게 일하는 이들 중에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왔는지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것을 깨고 자랑을 하라고 합니다.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소신과 원칙을 깨라는 말과 같으며 너의 소신을 포상과 맞바꾸자는 일종의 거래를 요구하는 행위입니다. 이 얼마나 부도덕한 발상이겠습니까? 만약 각종 인센티브 제도가 본질에 맞고 공정과 형평을 추구해왔다면 이러한 기형적인 자기 포상제가 생길 수 있겠습니까?


묵묵히 일해 왔던 이들은 그동안 줄곧 그렇게 해왔을 겁니다. 하지만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성실하게 주어진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 반드시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자기 위안’을 포상으로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승진체계의 구조적 부도덕이 원칙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려는 경찰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을 낙오자로 만들어 놓고는 기껏해야 자기 추천 포상 따위를 들이대며 오히려 그들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자기 추천 포상제’ 같은 제도가 조직 인사시스템에 대한 모순을 수면 위로 드러내 주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부도덕이 낳은 포상이라니 아이러니하군요. 선생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경찰 조직에 대한 성토로 비추어지는데 경찰 조직이 부도덕하다면 조직을 이루고 있는 인간에 책임을 돌려야 할 터이고 그렇다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장 경찰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당연합니다. 궁극적으로 부도덕의 화살은 구성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수십 년간 부도덕과 비인간성 안에 혹독하게 노출되어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해왔는지 경찰 구성원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야 마땅합니다.


대개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대다수 현장 직원은 발끈합니다. 발언권도 결정권도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소극적인 저항라도 해보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소극적 거부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응집력 있고 파괴력 있는 저항 방법일 것입니다.


정말 힘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같이 승진을 거부해버리십시오. 낚시 바늘에 매달린 ‘승진’에 몸과 영혼이 걸려들지 않게 하십시오. 상식과 양심을 승진과 바꾸지 마십시오. 시민과 동료와 자신을 승진의 대체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했을 때만이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테니 말입니다.”




대화는 오후 교육 시작 15분 전까지 이어졌고 내가 끊지 않았다면 우리는 수업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의실 안의 칸트는 의연한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는 활화산처럼 맹렬했으나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착실하고 바른 모범생이다. 활처럼 팽팽해진 의자 등받이 하나만 보더라도 수업에 임하는 그의 자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대운동장이 보이는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았다.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