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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Sep 25. 2019

'식물 지구대'

현장 경찰은 어디로 갔나




첫 발령지 당진을 떠올려본다. 당시 인천제철을 인수한 현대제철이 고로 제철소 건설에 착수하며 지역 사회에 큰 지각변동을 예고 하고 있었다. 전국이 불경기였지만 당진의 건설붐은 용광로만큼이나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송악 산업단지를 관할하는 중앙지구대에서 뛰고 있었는데 당진서의 경우 접수한 형사 사건은 인지(보고)서, 피의자신문 뿐만 아니라 변사 지휘 건의 등 검찰과 연계된 업무 또한 지구대에서 처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즉 지역관서는 확장된 개념의 형사ㆍ수사ㆍ교통조사팀이었던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행범ㆍ긴급체포, 변사사건 등 손 많이 가기로 유명한 사건들이 쓰리콤보로 발생하면 대개 야간 근무를 마치고도 점심을 훌쩍 넘겨 퇴근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시골 동네에 사건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산업도시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었던 데다 이미 군 단위의 치안수요를 월등히 넘고도 남는 지경에 이르렀던 점을 고려해보면 3급서 인원으로 1.5급서 치안수요를 커버했다볼 수 있으리라.

덕분에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치상, 강간, 강도, 특수상해, 야생동식물보호법 등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비번에는 피해자의 병실에서 진술을 들었다. 살인미수 목격자를 찾아가 손으로 조서를 썼다. 어떤 사건들은 1차 2차 대질 조서까지 받아야 했다. 사건을 다룰 기회가 많았으므로 신임 경찰에게는 행운 또는 호사를 누렸다고 해야 할까?

한편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구대는 본연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식물 지구대'였다고 생각한다. 신고 출동을 나간 뒤 사건을 물어오면 지구대나 치안센터에서 관련자를 조사해야 했다. 이때 나머지 경찰은 손가락만 빨 수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시비나 폭행 현장에 '나 홀로 출동'은 당연한 분위기였다.

이후 몇 해 지나지 않아 당진군은 시로 승격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경찰서도 2급서에 해당하는 지원을 받게 되었을 것이므로 1인 출동 근무의 위험성은 사라지고, 형사ㆍ수사ㆍ교통조사 출장소 역할 또한 완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착각이었을까. '칼 든 피의자 앞에 홀로 출동한 당진 경찰'이라는 언론 보도를 듣고 미간이 일그러져 버렸다. '당진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나?' '경찰관 2만명 증원하고 있다는데 현장 늘 인력난에 허덕이나.' 


경찰청 내부 게시판에 이번 사건의 관할 파출소 팀장이 해명 글을 올렸다. 정당하고 불가피한 측면을 시간ㆍ상황별로 구구절절 묘사하고 있었지만 그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 문장이었던 듯 싶다.


인원 보충 없다면 악순환은 반복된다.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


-언론보도-

당진 흉기난동 현장 출동한 경찰, 초동조치 부실했나.. 해당 경찰관 대기발령 (뉴스투데이, 19.9.17.)

 표지 사진 (YTN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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