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협 법이 가결되었다. 나는 호들갑 떨지는 않았다. 아니 이미 오랜 전부터 차분했었다. 현장 활력 회의(직협의 전신), 비록 이철청 전 청장이 판을 깔았다지만 지난 세월, 조직의 부조리ㆍ부당함에 맞서다 모진 핍박을 온몸으로 받았던 선배들과 이 모양 저 모양으로마음을 모았던 현장 경관들의 염원이 꽃이 된 결과라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직장협의회는 대한민국 경찰 조직, 즉 노동자로 대변될 현장 직원들의 실질적인 권익 보장 창구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직장협의회가 권력화 되리라 확신하고 있다. 말하자면 계급ㆍ출신의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조직의 반대편에 절대다수의 현장 직원들의 힘이 집결되어 우뚝 서게 될 테니까. 거대한 조직 안에 또 하나의 거대한 조직의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직장협의회가 누군가의 권력ㆍ명예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전락하게 될 가능성은 단지 가능성이 아니며 예견된 수순이라고 본다.승진의 잦은 실패, 한계를 인식하여 자발적 포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명예욕이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이들에게는 매력적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직협 위원장은 절대다수 경위 이하 경찰관들의 권익의 대변자로서 기관장과 마주 서야 한다. 이에 위원장의 인맥ㆍ수완ㆍ정치력이 빛을 발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명예가 우선 동기였던 자가 대표가 되더라도 현장 경관에게 이익이 구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일만 잘하면 되지 그게 무슨 대순가'라고 하는 이들에게는 박수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직협 대표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현장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된 순간, 그는 위원장은 고사하고 조직에 온전히 발을 붙일 수 없게 될 수 있다. 현장의 대표가 현장에게 손가락질받으면서까지 그 자리에 설 명분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직협 위원장과 임원들은 헌신을 자청했다. 승진도 급여도 없는 어쩌면 껍데기나 그림자 같은 자리다. 따라서 외롭고 서운할 때가 있을 것이다. 아니 늘 고독하다. 그러므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자, 서운함을 감사함으로 여길 수 있는 자여야 직협을 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자면 이런 이들, 즉 '자신을 누군가에게 주는 이'야말로 진정 사랑꾼이라 할만하다. 알다시피 사랑이 진심으로 전달될 때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현장은 그런 그에게 존경을 나타낼테고 나아가 이름을 높일 것이다.
직협, 경찰의 인간성 회복의 디딤돌
직장협의회는 상당 기간 아니 어쩌면 이 제도가 존속하는 한 꺼지지 않는 갈등의 불꽃이 될 것이다. 말했던 대로 직협을정치적 야욕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자들이 등장할 것이고, 기관장과 결탁하여 흔히 말하는 어용으로 전락하게 될 인사도 분명히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협 없는 조용한 경찰보다 밥그릇 깨지는 요란한 사회를 나는 갈망한다. 앞은 개인의 개성ㆍ인격이 하향 평준화된 조직일 가능성이 높지만 뒤는자유로운 개인이 존중받는사람냄새나는 곳이라 생각해서다.
현장의 권익을 대변하는 경찰 직장협의회가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역사적 순간에단언해본다. 현장의 불편은 어제 보다 오늘이 낫고 내일은 더 희망적이리라. 설령 요란한 깡통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히 빛난다. 여태껏 숨죽여 왔던 현장의 경관은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고, 나아가 누릴 수도 있게 되었으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