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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Dec 04. 2019

황운하도 잊히고 있다


1


현장은 청장이 바뀔 때마다 '빤하다.' '별 볼 일 없을 것'이라 강하게 불만을 토로한다. 순화해서 표현해보자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도매금으로 넘기듯 단칼에 베어버리는 맹목적인 비난은 사실 무척 타당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온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한 것을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볼멘소리 즉 '청장이 바뀌어도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는 이처럼 뿌리 깊다.

그건 그렇고 어제오늘 대전청장 황운하에게 쏟아지는 내부의 비판ㆍ비난 댓글 세례를 지켜보고 있다. 무척 당혹스럽다. 추측컨대 이런 기류는 그가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함과 함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 재점화되면서 거세게 번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물론 나는 표현의 자유를 원하므로 반대 의견도 당연히 지지한다.

언론에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그의 궤적을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 이리라. 경찰대 출신에 현장과는 너무 먼 지방청장이라는 사람이 심지어 국민적 혐오 단체인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니 말이다. 두어 걸음 떨어져 보고 있노라면 마치 황운하는 현장 경찰에게 가장 기피되는 것들만 온몸에 두른 듯하다.

2

장신중 전 강릉서장은 레전드가 되었다. 말이 좋아 레전드지 그는 이미 잊혔다. 직장협의회 법이 통과되었다면 장신중의 이름 정도는 떠올라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없고 머릿속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런 형태로 황운하의 모습도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한화 김승현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관련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사퇴를 요구했었다. 강신명 청장에게도 지면을 빌어가며 비판했다. 모두가 수사 주체로서 경찰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렇듯 수사 기소 분리에서 만큼 내부도 외부도 그의 핏발 서린 호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수사권 독립 강경파'라는 별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치안감 승진을 하고 울산청장이 되자 울산청 현활 '고동소리' 출범에 힘이 되어주었다고 알고 있다. 이는 고집스럽게 일관하고 있는 수기 분리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수기 분리는 민주주의 이념의 실현이다. 권력 대 권력의 상호 견제 시스템, 그것만이 검찰 독점폭력성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따라서 청장과 현장 간의 민주적 소통 창구인 직협 등을 지지한다는 건 그로서는 당연했던 것이다.


3

황운하에 대한 짤막한 추억을 떠올려본다. 2010년. 당시 경찰 실적주의 전도사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조현오 서울청장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건너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당시 전국의 현장은 그야말로 폐품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잡아 돌릴 만큼 실적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팀과 팀, 지구대와 지구대, 경찰서 대 경찰서간의 그야말로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 충남청에서 서울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서울청장과 현장과의 대화'라는 공문을 보고 서울청 나들이에 나섰다. 이런 사태를 낳은 조현오 청장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청장을 센터로 장과 각 과장이 모인 자리에서 실적주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던 것으로, 내 희미한 기억을 빌자면 '현장은 왜 이리 아우성인가'였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온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자, 나를 포함 고작 대여섯 명 참석한 현장 직원들은 긴장했다. 거대한 홀에서 수많은 직원들 틈바구니에 끼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나에게 마이크가 오면 어쩌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고, 마이크를 잡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모른 채 '그야말로 현장은 아우성이다'라는 취지로 진땀을 뺐다. 완전 찐따 됐다고 숨을 구멍을 찾고 있었는데 오아시스를 만나게 된다. 서울청 형사과장 황운하였다. '지금 우리는 현장에서 온 저 직원의 말을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만 접했던 그 황운하였던 것이다. 청장 눈치만 보며 인상적인 한마디 못하고 있던 참모들과 달리, 그는 어제오늘 언론에서 듣고 있는 그 목소리 그 톤으로 선명하게 말했던 것이다.

4

나는 꽤 오래전부터 황운하를 지지해왔다. 왜냐하면 그의 의분은 일관되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수기 분리에 경찰 인생을 친 인상이 강하여 현장의 처우개선과는 멀리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그는 경찰에서 아니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정의로운 사람의 모습을 보여왔다고 믿는다. 경찰은 황운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검찰과 대응하지 못했던 지휘부를 대신하여 창이 되었고 일선 순경의 한마디에 강한 메시지를 더해 청장에게 호소했으며, 책임 있는 자리에서 현장 처우 개선을 위해 줄곧 민주적 행보를 펼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가. 나는 그에게 돌려진 비난의 화살이 심히 부당하다고 느낀다. 더욱이 조직 내부의 손가락질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괜찮은 지휘관 하나 봤으면 좋겠다고 현장은 성토하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직을 걸었던 소신 있는 말과 행동. 그런 노력으로 더욱 가까워진 수기분리 나아가 현장의 민주주의.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던 것인가.

5

황운하는 잊힐 것이다. 마치 장신중처럼.. 세월의 빗자루 질을 누가 막을 수 있으리오. 바라건대 언젠가 그의 이미지가 지워지더라도 정신만큼은 왜곡됨 없이 계승되기를 희망한다.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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