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lisopher May 02. 2020

자빠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경찰직장협의회에 대한 간극, 경찰 전체가 자빠져야 좁힐 수 있을 듯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벌써 수개월 째 베스트 목록의 상위에 올라있다. 책을 사볼까 하고 후드득 넘기다 덮어버렸다. 책 내용과 별개로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워낙 거대해서 굳이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공짜로 깨달음을 얻고 돈까지 굳혔으니 베스트셀러로서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맞다. 멈추어야 보이는 것이 맞지만 우리 경찰은 자빠져야 보일 것이다. 저 안정감 넘치는 삼각 피라미드가 자빠졌을 때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피라미드는 아래로 흐르기만 할 뿐 거꾸로 솟아오르는 법이 없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반면 자빠진 삼각형은 좌와 우만 있을 뿐 위와 아래는 없다. 자빠진 건 좌우 상호적으로 흐를 것이다. 이 또한 자연의 법칙으로서 우리는 거스를 수 없다.


경찰청이 소통을 말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애초부터 피라미드형의 골조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 근래 잠시 소통이 되려니 기대하고 느꼈던 것은 경찰의 주인공들, 즉 일선 경찰이 저 탑에 올라보려고 발버둥 칠 때였다. 거기서 주르륵 미끄러진 지금 다시 오를 위치를 쳐다보지만 다시 오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경찰 조직 전체는 한 번 자빠져 보아야한다. 그래야 조직이 안고 있는 근본 모순과 문제점이 보일 것이다. (c)대파경

삼각형 꼭대기의 경찰청 또한 잠시 내려가 보기로 한다. 하지만 발만 살짝 걸쳐야지 여차하면 미끄러져 저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기감이 섬광처럼 번쩍일 때, 그들은 수줍은 듯이 조심스레 발을 제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저~ 아래와 이어갈 거리를 찾는다.    


경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통이라는 행위가 허공에 외쳐 대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지껄임, 주문을 외우듯 습관이 되어 버린 지는 오래다. ‘자 자 노력하고 있으니 나아지지 않겠소.’ 감히 우리가 시도를 하고 있으니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상냥한 억압만이 남았을 뿐. 가장 자율적이어야 할 일 마저 명령에 따라야 하니 경찰은 소통을 해본 적이 없는 셈이다.


소통*의 ‘소’ 자라도 맛보아야 한다면 경찰은 피라미드를 거세게 자빠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불공정과 불평등, 부당함, 몰상식의 펜스를 부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순경 패밀리*와 현장이 원하는 것은 인위적이지도 억지스럽지도 않다.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인격적이다. 요컨대 지시하고 명령하는 나와 형체만 같은 군주가 아닌, 함께 얘기하고 고민하며 행동하는 형체도 같은 동료를 원하고 있다.  


-경ㆍ찰ㆍ평ㆍ론-  2013. 4. 25.


■주

*순경 패밀리 : 순경부터 경사 계급의 경찰관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때 쓰고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상의 임무를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수행하고 있는 오리지널 경찰, 직접 경찰에 해당한다. 경찰 노동자로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통(疏通) 네이버 사전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인지부조화가 그렇게 말하는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