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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an 18. 2019

황운하에게 바란다

황운하. 2006년 대전서부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검경수사권조정에 대한 경찰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다가 좌천성 인사를 겪었다. 이듬해 소위 한화 그룹의 ‘보복폭행’ 논란으로 이택순 전 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다 항명파동으로 감봉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6년 정권의 눈치만 보며 수사권에 미온적이라며 강신명 청장을 공개 질타했다. 정권이 바뀌고 검찰의 전횡이 이슈가 될 때마다 검찰 견제를 위한 수사 기소 분리를 강하게 외쳐 왔다. 물론 비판의 대상은 내외 구분 없었다. 그래서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붙는 것이 있으니 경찰 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대표적 ‘강경파’이다.


경찰 입장에서 수사권 구조개혁이야 마땅히 해결해야할 숙제였으므로 타당한 논리를 차곡차곡 쌓았다. 수많은 세미나를 열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보았다. 하지만 늘 허탕이었다. 검찰의 무시무시함이 청와대나 국회 구석구석까지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 하나 안 들이고 늘 무위로 돌려놓았다. ‘국민이 보기에 권력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청와대나 정치권에서 한 마디 흘러나오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안 그러는데 왜 경찰이 자꾸 시비 거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한 발 물러난다. 뻘쭘해진 경찰은 도리 없이 저 브리핑을 되 읊으며 달팽이집으로 쏙 들어간다. 주위 사정은 그런다 치더라도 경찰청장에 따라 수사권 개혁의지가 들쑥날쑥, 일관성 없었던 것은 문제였다. 그래서 국민도 정치권도 경찰에게 수사권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렇듯 경찰 고위직이 비춰준 경찰수사권에 대한 의지는 대부분,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나머지 신중론으로 갈무리되곤 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사권 구조개혁을 외쳐 온 이가 황운하였다. 그러므로 경찰청 입장에서는 애물단지일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수사권 개혁을 호소할 때는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발언들이 부메랑처럼 지휘부에 대한 성토로 돌아오므로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요할 때는 전면에 내세우다가도 승진에는 누락시킴으로써 더 큰 힘을 실어주지 않은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고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수사권 개혁 문제에 남은 경찰 인생을 던지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경찰로서 마지막 직책이 될 뻔했던 수사구조개혁단을 맡았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뛰어오다가 검찰 개혁을 제 1의 기치로 내건 정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회생은 희망이었다. 많은 이들이 환호했고 반겼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인데 그의 승진은 안도가 되었다. 어찌된 일일까. 그가 사촌이 아니라서 배가 안 아팠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면 더더욱 축하나 기뻐할 일이 아닌데도 모두가 들떴다. 아마도 지난 십 수 년 간 그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그와 감정을 공유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의 승리를 내 일처럼 기뻐하듯 말이다. 그런 선수들에게 앞으로도 더 높은 기량을 발휘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황운하가 조직에 더 남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운하는 시즌 No.2를 맞이하게 되었다. 경무관까지의 여정을 시즌 No.1 ‘일편단심 수사권 투쟁기’라고 한다면 치안감이 된 지금부터는 시즌 No.2가 된다. 간절히 바라던 승진이었으므로 각오가 남다르겠지만 그의 승진을 바랐던 현장의 일원으로서 시즌 2를 기대하며 얼개를 짜 보았다.


첫째, 경찰과 실적주의는 물과 기름이다. 현장경찰에게 진정한 보호의 가치를 알게 해 달라.


광역자치단체의 치안 책임자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지위다. 수백만 도민과 시민의 평온한 삶을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치안을 직접 맡고 있는 현장경찰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황운하 치안감도 잘 알고 있듯 지난 수년간 트렌드에 충실해 온 덕분에 경찰의 정체성은 혼란기에 접어들었고 고착화 된 모양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과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실적주의가 경찰의 온 시스템을 장악하였고 경찰 개인의 정신마저 마비시켰다. “경찰에게 국민은 보호의 대상인가, 실적의 도구인가.” 이런 의문이 맴도는 것만으로도 국민 앞에 면목 없는 것 아닌가. 경찰이 국민의 눈을 당당히 마주칠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


둘째, 현장경찰의 인권문제 해소야말로 대국민 인권경찰의 완성이다.


인권경찰을 전제로 수사권 구조개혁이 부여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마련된 방안들이 경찰위원회 실질화, 인권영향평가제 도입, 살수차 사용요건 법규화 등으로 제도적 인권경찰을 구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찰 구성원의 인권보호 방안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는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과 같은 갑질 논란은 남의 일이 아니다. 사적심부름, 성희롱, 막말, 모욕 등 최근 몇 년 사이 조직 내부에서 공론화 되었던 사건들을 떠올려보라. 이에 대한 근본대책 없이 대국민 인권경찰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 또한 국민 앞에 면목 없는 짓이다. 경찰은 개인의 양심을 가지고 법률에 따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지 군기로 일하는 ‘것’들이 아니다. 유연함이 생명인 현장경찰에게 획일적 사고와 행동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 아니겠는가. 경직된 사고는 반드시 유연함을 해친다. 그것이 비인권적 태도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현장경찰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실적주의와 내부 인권의 방치는 경찰의 근간을 오염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것들은 건강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며 씨앗도 퍼트리지 못하게 한다. 국민에게 품위 있고 향기로운 경찰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이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이가 황운하 치안감이다. 왜곡된 형사사법시스템을 바로 잡기 위해 경찰 인생을 바쳤듯 이제는 일그러질 때로 일그러진 ‘현장경찰’의 체계와 정체성을 바로 잡기 위해 나서줄 때다. ‘경찰 정체성 바로잡기 “강경파” 황운하’, 이런 별명 하나 더 욕심내 달라.


2017. 8. 4.


ㆍㆍㆍ kantrol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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