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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이네 Jun 22. 2024

콰지와 칼리코잭

소아사시

  6세 정도의 공주를 키우다 보면, 만화 취향이 둘로 나뉘기 마련이다.


  난 프린세스다! vs 모험, 구조를 하며 으쌰으쌰


  뚱이는 후자에 속한다. 그동안 뚱이가 거쳐온 만화의 계보를 살펴보자면, 위대한 뽀통령을 시작으로 로보카 폴리 – 슈퍼윙스 – 바다탐험대 옥토넛으로 이어지는데, 그중 뚱이의 원픽은 지금까지도 단연 옥토넛이다. 참고로 난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옥토넛이라는 만화가 있는지도 몰랐다.

  (아, 물론 모두에게 인기를 얻는 예외가 존재한다. 바로 티니핑이다. 내가 봐도 귀여운 애들이, 얼마나 사명감 있게 임무를 수행하고 왕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지… 12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주인공 로미도 무척 멋지고 예쁘다. 시즌1이 나올 때 알았더라면 주식을 샀을 텐데. 어쨌든 재밌다.)

  옥토넛에 나오는 고양이 캐릭터인 ‘콰지’는 해적 출신인데, 증조할아버지 ‘칼리코잭’ 역시 전설적인 해적이었다고 전해진다. 뚱이와 나는 요즘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콰지와 칼리코잭이 되는 놀이를 즐겨 한다.     




  ‘사시’란 두 눈이 똑바로 정렬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종류도 다양하고 원인도 다양하며, 전 인류의 4% 정도에서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뚱이는 그 4%에 해당하며, ‘간헐적 외사시’ 진단을 받았다. 간헐적 외사시인 유아들은 평소에는 사시가 발현되지 않으나 피곤할 때, 멍하게 있을 때 등 말 그대로 ‘간헐적’으로 눈동자가 바깥으로 나가 있게 된다.

  돌이 지날 무렵,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나른해 보이는 뚱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오른쪽 눈동자가 옆으로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기들은 사시로 오해받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눈동자가 매우 클뿐더러, 동양의 아기들은 어릴 때 눈이 작고 콧대가 낮아서 눈이 몰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엄마와 아빠가 아기인 뚱이의 눈을 보며 의심하는 시기, 인터넷과 건강 관련 서적을 보며 걱정하는 시기를 지나, 뚱이는 소아안과 전문의 선생님께 정확하게 진단을 받았다. 간헐적 외사시에 해당하며, 눈이 돌아가는 각도가 큰 편이라 수술이 권장되는 상태. 그러나 한 번 더 정밀하게 진단하기 위하여 두 달 뒤 오후에 내원해야 할 것이며, 그동안 한쪽 눈에 가림패치(안대)를 붙이고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뚱이네 가족이 요즘 해적이 된 사연이다.     




  가림패치를 붙이면 많이 답답하고 힘들다.

  평생을 양안시로 살다가 한쪽 눈에 안대를 붙이고 뭔가를 하자니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계절이 습기를 머금을수록 불편함은 더해진다. 땀 때문에 안대의 접착 면이 떨어지려는 것을 거듭 눌러 붙여주며, 때때로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이 주체가 안 되는 순간이 어디 그뿐이랴. 소아안과에서 진단을 받던 날, 뚱이는 진료실 안에서 틀어주신 뽀로로를 보고 있고, 나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사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 뒤에 들을 이야기도 이미 충분히 예상을 하고 갔음에도, ‘수술’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수도꼭지가 열려버렸다. 뚱이에게 나는 평소에 잘 우는 엄마였지만, 겨울왕국을 보다가 우는 것과 뚱이로 인해 우는 것은 아이에게도 다를 것이다. 뚱이가 모니터 속의 뽀로로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나는 엉망이 된 얼굴을 닦고 심호흡을 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래, 건강하고 착하게만 자라다오.”를 외치는데, 아이를 키우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인 것 같다. 뚱이는 건강한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부터 각종 바이러스를 모두 겪어온 역사가 있다. ‘착하게’ 자라는 것도 너무나 어렵다. 도대체 뭐가 착한 것일까? 남을 배려하는 것?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 심오한 육아관보다 당장 오늘의 저녁 메뉴가 더 고민이다.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는 하루에 감사하며, 오늘도 퇴근할 때 마음을 다잡고 해적이 될 준비를 해본다. 엄마 아빠도 함께 안대를 붙이고 해적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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