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뚱이네 Jun 19. 2024

아빠는 뭐든지 이길 수 있어?

생애 첫 운동회와 좌절

  셋이서 저녁을 먹고 있는 평범한 풍경. 남편이 비장한 표정으로 뚱이에게 말을 한다.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누구든지 이길 수 있어. 그런데 엄마한테만 져주는 거야."

  뚱이의 6살 인생에서 아빠는 ‘신뢰의 상징’인데, 아빠를 뚫어지게 보는 뚱이의 표정이 뭔가 미심쩍다.  

  "그럼 달리기도 1등 할 수 있어…?"

 

  나는 웃음이 빵 터졌고, 우리 가족은 주말에 있었던 생애 첫 운동회를 떠올린다.




  팬데믹이 끝나고 사회 곳곳에서 여러 단체 행사들이 재개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들의 운동회다. 올해 처음으로 유치원에 다니게 된 뚱이 역시 이번 봄에 무려 가족 운동회를 경험해 보게 되었다. 돌 무렵부터 다져진 놀이터 짬밥이 있기에, 우리는 뚱이가 어떤 경기를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닥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달리기 시합을 미리 해봤다길래 그런가 보다 했을 뿐.     

  아빠가 엄마를 업고 뛰는 경기가 있대. 엄마가 아빠를 업으면 안 되겠지? 따위의 걱정을 했을 뿐이었다.

     

  누구보다도 운동회를 기대하고 들떠있던 뚱이가 대성통곡을 하며 체육관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계주 경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때껏 신나게 놀던 뚱이가 급격히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말 그대로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당황한 엄마 아빠가 다독이며 왜 우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자기도 계주 선수를 하고 싶단다. 하…     

  운동을 좋아하고, 늘 이기고 싶어 하는 뚱이는 홍팀의 계주 선수가 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속상해서, 제일 친한 친구가 선수로 뛰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아빠에게 안겨 나왔더랬다. 엄마가 달래면 속상해서 더 눈물이 나고, 아빠가 진지하게 조언하면 섭섭해서 눈물이 나는 뚱이는, 그대로 폐회식까지 체육관 밖에서 눈물을 쏟았다. 체력장 5등급을 비롯하여 일생을 체포자로 살아온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슬픔이었지만, 뼛속까지 F인 엄마였기에 급기야 두 모녀가 쌍으로 울 것 같은 대위기가 닥쳐오고야 마는데.     


  이 위기는 비눗방울님 덕분에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 폐회식 이후 유치원에서 단체 선물로 주신 비눗방울을 날리고 뛰어다니며 아이의 기분은 조금 나아졌고, 놀이터와 저녁 외식까지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평범했던 그 저녁까지 뚱이의 마음 속에서 ‘시합, 1등, 이긴다’ 등의 키워드는 모두 달리기와 연결된다.

     



  살면서 겪을 크고 작은 좌절 중, 어떤 것은 뚱이에게 큰 상처를 줄 것이고, 어떤 것은 뚱이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좌절도 겪어본 아이로, 그래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겠다고 당차게 말해야 모범적인 답변이 되겠으나… 상처받은 아이의 눈물은 좀처럼 의연하게 대처하기가 힘들다. 비눗방울만큼의 위로도, 내년을 기약하자는 약속도, 어느 것도 나는 주지 못한 채, 체육관 밖에서 우는 아이를 땀 흘리며 그냥 안아주었다.     

  우리 뚱이, 1년 동안 달리기 연습 제대로 해 보자. 엄마는 다이어트 할게. 내년에는 꼭 아빠한테 업힐 거거든.

이전 02화 뚤리러빼끄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