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8일
수예부에서 2학기 특활로 만들던 가방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 가방의 물건 넣는 곳은 이제 마무리까지 다 완성되고, 지금은 들고 다닐 수 있게 해주는 끈 부분을 만들고 있다. 2학기 초에 실 가게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god의 풍선 색인 하늘색 실로 만드는 가방이라며 좋아하던 게 얼마 안 된 듯싶은데 벌써 완성이라니. 더군다나 나는 이런 뜨개질이니, 자수니 하는 것에는 전혀 소질이 없고 끈기가 모자라서 다 완성할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다 뜬 가방을 보니 뿌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특활도 다음 주가 마지막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완성해서 내가 만든 가방을 보고 싶다.
이날까지 내가 잠시나마 발을 들여 본 취미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혼자 하는 일이다.
두 번째,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세 번째, 엄청난 끈기를 요구하지는 않는 일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하여 현재까지 살아남은 취미로는 독서, 뜨개질이 있다. 한때는 좋아했으나 중도 탈락한 취미에는 수영, 피아노가 있다. 얼마나 자주 하는 일인지, 어느 정도의 빈도수로 하는 일인지 봐야 한다면, 독서나 뜨개질도 슬며시 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어야 할 단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애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둘은 틀림없는 나의 취미다.
수영과 피아노는 그만두기에 아쉬웠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었다. 나는 두어 달 단위로 수영을 재등록하여 몇 년에 걸쳐 자유형만 세 번쯤 배운 사람이다. 결국 자유형도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하고 끝났지만, 다니는 동안 정말 즐거웠다. 평생 운동이라면 질색했는데 이렇게 재밌는 운동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물속에 있는 나에게만 집중하면 한 시간이 그냥 흘렀다. 수영을 관둘 때는 여러 상황이 겹쳐서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95% 정도는 핑계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네 번째 조건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아무 데서나 할 수 있는 일’이 결국 현재 나의 취미가 되었다.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할 때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그저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평범한 직장인의 취미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밥벌이와 일상의 수많은 할 일에 밀려 가끔, 불규칙하게 기회가 오지만, 그마저도 푹 쉬고 싶은 마음에 밀려나기도 하는 일 말이다. 그러다 또 삶의 한구석에 여유와 틈이 생기면 잠시 넣어두었던 취미들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생각지 못하게 새로이 갖게 된 취미가 큰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나에게는 요즘 글쓰기가 그렇다.
지금은 동아리라고 부르는 학교의 특활 활동은 특정 부서의 인기가 치열했다. 레크리에이션이나 영화 감상부에 들어가려고 가위바위보를 여러 차례 했던 생각도 어렴풋이 난다. 내가 어떻게 해서 수예부라는 엉뚱한 부서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수예부에서 뜨개질을 배우는 것이 점점 재밌게 느껴지던 어느 날의 기분이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있다.
처음으로 뜨개질을 배웠던 2001년의 일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실은 따로 있다. 바로 ‘하늘색 실’을 고르던 그때의 나다. 나는 god의 팬이자 전국에 수만 명은 있었을 계상부인 중 하나였다. 대상이 무엇이든 색깔을 하나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하늘색이 마땅했다.
당시만 해도 동네에 꽤 흔하게 있었던 수예점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실을 고르던 생각이 난다. 비슷한 두께여도 재질에 따라, 명도와 채도에 따라, 펄 유무에 따라 어찌나 다양한 하늘색 실이 있던지, 실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하늘색 실 중 하나를 낙점하기만 하면 근사한 소품 하나가 떡 하니 나오는 줄 알았는데! 코바늘 뜨개질은 생각보다 정말 어려웠다. 하늘색 실을 고르던 행복만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바로 이 답답함이다. 바늘을 쥐는 손이 어색했던 것은 물론,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것은 도대체 어느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지, 첫 코를 세는 기준이 어디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점이었다.
선생님께 계속 여쭤보기가 민망해서 집에 가져갔지만, 엄마가 아무리 설명을 해주셔도 그다음 줄이 되면 이 코가 그 코인지 헷갈렸다. 가방의 밑판을 뜨기 위해 뜨고 풀기를 반복하며 바늘을 움직이는 손은 제법 자연스러워지고 있었지만 그놈의 코! 코를 이해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엉성했지만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던 나의 첫 작품은 이제 사진으로도 남아있지 않다. 언젠가 버렸던 것인지, 없어진 건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왔던 실 색깔과 열심히 배우고 뜨던 기억이 선명한 것에 비해, 어째서 가방의 행방은 전혀 알 수가 없는지 모르겠다. 열세 살에 쏟았던 애정만큼 아쉬움이 크다.
우연한 기회로 배우게 된 뜨개질은 그 이후로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왔다. 고등학교 때는 수행평가로 컵 받침을 제법 잘 떴었고, 대학교 때도 어떤 수업에서 뜨개질을 할 일이 있었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똥손이었던 내가 거의 유일하게 잘했던 과제였다.
학생 신분을 벗어난 뒤에도 뜨개질은 계속되었다. 한때 친구들과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 용품을 공동 구매하여 오랜만에 대바늘을 잡기도 했다. 그렇게 또 뜨개질에 꽂혀서는 연애 시절 남편에게 차콜색의 기다란 목도리를 떠주기도 했다. 뚱이를 임신하고선 아기 신발을 떴고, 몇 해 전에는 뚱이와 함께 들 커플 가방을 뜨기도 했으니, 정말 오랜 시간 무늬 정도는 뜨개인으로 살아온 셈이다.
‘취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뜻풀이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토록 오랜 세월 뜨개질을 했어도 아직 초보 수준의 도안밖에 못 보지만, 나는 뜨개질이 좋다. 다독하시는 분들께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지만, 나는 책이 좋고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밀려있다. 이 정도 애정이면 취미라고 해도 되겠지.
저희의 커플 가방입니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