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29일
오늘은 학교에서 오는데 김다나가 최소연에다 대고 “야 **년 ****, 아~씨!” 하면서 술 취한 사람처럼 악을 써댔다. 사람들도 아이들도 모두 다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도 같이 가는 친구라서 좀 챙피했지만 그래도 다나가 좋다. 그런데 그 이유가 최소연이 자기를 안 만나고 남자아이들만 만난다는 하찮은 농담에 용감하고 씩씩한 다나가 삐져서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기가 막혔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아홉 살의 나는 김다나라는 용감하고 씩씩한 친구를 참 좋아했다. 어느 날 다나가 소연이에게 삐지는 바람에, 길에서 쌍욕을 퍼부어서 조금 창피했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우정은 여러 갈래의 사랑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단어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내가, 지금 우정에 대해 뭐라 정의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오늘, 이 시점에 어렴풋이 배워가는 것 중 하나를 써보려고 한다. 나는 우정과 친구를 통해 몰랐던 나 자신을 한 뼘 더 알아가는 중이다.
사랑과 우정은 가깝고 친밀한 상대와 주고받는 마음이다. 나는 이 소중한 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솔직한 사람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을 준 사람과 서서히 멀어지기를 택하는 비겁한 유형이기도 했다.
1997년 3월 26일
오늘은 혜진이가 아파서 결석을 하였다. 준비물은 내가 꼭 전해 주려고 했는데 까먹고 말았다. 다른 친구라도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나는 혜진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앞에 있는 000도 안 빌려주는 풀, 가위를 혜진이한테는 빌려준다.
초등학교 때 내가 좋아했던 친구는 혜진이와 희원이였다. 혜진이와는 다른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몇 번 따로 만나기도 하고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그 불규칙한 만남은 어느 시점엔가 끊어지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에서 다시 만나 너무 반가웠지만 만나지 못했던 몇 년의 간극은 끝내 어색하게 남았다.
가장 사랑했던 친구 희원이와의 끝은 후회로 남았다. 혜진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해서 처음 한두 해는 꾸준히 연락했는데, 인연의 끈을 아주 가느다란 실이 되게 만들었다가 결국 끊어지게 만든 것은 내 쪽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집안에 몰아닥친 크고 작은 불행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민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던 집에서 대형 종합학원을 다녔던 희원이는, 그곳에서 만난 남자 친구들과의 연애 이야기를 틈틈이 내게도 업데이트 해주었다.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몇 시간이고 통화를 하던 우리였는데, 나는 희원이와의 대화가 점차 지치고 힘들었다. 사랑과 애정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표현했지만, 슬픔과 피로감은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말을 잃어버린 나는 서서히 연락을 안 받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의 자격지심과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 만나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최악의 방식으로 우정을 잘라내 버린 셈이다.
사춘기라 부를 수 있는 나이를 지나오며 희원이를 종종 생각했다. 단 한 번의 싸움도 없이, 불평도 없이, 모닥불이 꺼지듯 사그라져 버린 인연들을 떠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 나 스스로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였다. 소울 메이트였던 친구에게 무언의 이별을 선언하고 상처를 준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희원이는 내가 겪고 있는 불안과 슬픔을 몰랐던 게 당연하다. 이유는 너무도 당연히, 내가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희원이는 그 나이에 맞는 기쁨과 설렘을 경험하는 중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인 나에게 공유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나와 멀어져야 했던 다정한 희원이에게 끝내 아무런 설명도, 사과도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열다섯 무렵의 이별은 이후에 이어진 내 삶에도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최소한 영문도 모른 채 이별하는 일은 없게끔 하자, 이별을 피하지 말자, 여러 번 다짐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이 넘어서 너무나 소중했던 두 사람과, 역시나 천천히, 결국은 헤어졌다. 두 번의 헤어짐은 지금도 회복되지 못한 채로 애매한 딱지가 되어 내려앉았다.
한 번은 가족이었고, 한 번은 가족과도 같았던 친구였다. 내 손을 먼저 놓은 것은 그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 역시 비겁했다는 걸 안다. 내가 그들을 정말 사랑하고 아꼈다면, 왜 그랬는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었는지 한 번쯤은 따져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가 휘발되어 관계를 끝내고 숨어 버리는 것은 좋은 이별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구를 꽂아버리는 것은 여전히 자신이 없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수험 생활과 육아를 하는 동안, 생존 신고도 없는 나를 기다려 주고 이해해 준 이들에겐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겠지만, 글로나마 솔직하게 쓸 수 있는 나의 노력은 ‘혼자만의 껍데기 속에 숨지 않기’다. 관계의 재정비가 필요할 때 혼자 체념하고 포기하는 대신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상처받았다는 무언의 시위 대신, 다정한 언어와 배려로 인연의 끈을 튼튼하게 묶어보려고 한다. 세 번째 허무한 헤어짐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