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 3일의 인고

관성을 깨기 위한 최소 단위

by 뚱이애오

'작심삼일'.

"결심이 3일을 가지 못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하지 못하거나, 결심만 하고 시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말은 늘 실패의 상징처럼 들렸다.

하지만 최근, 이 "작심삼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든 사흘만 꾸준히 반복해도 몸과 마음은 서서히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엔 이 관성이 습관으로 바뀌지 않을까?


나는 서른이 될 때까지 운동이란 걸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더 효율적으로,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주변 환경을 바꾸는 부지런한 게으름뱅이였다.

자연스럽게 점점 체중이 늘고, 건강은 뒷전이 되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는 생각보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왔다.
최근에야 이를 느껴 일상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두 번,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 계획을 세웠다.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러닝머신 위에서 30분간 빠른 걸음과 가벼운 달리기를 섞었다.
저녁에는 팔 굽혀 펴기, 런지, 스쾃, 플랭크 같은 맨몸 운동을 했다.
가끔은 배드민턴 모임에 나가 90분 정도 땀을 쏟기도 했다.

3일째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침대의 중력이 너무 강했다.

'오늘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체육관으로 향했고, 뛴 지 10분도 되지 않아 심신이 맑아지고 개운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4일째 아침엔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몸이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운동화를 꺼내고 있었다.
의지가 아니라 관성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식습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면, 튀김류, 매운 음식을 즐기던 경향을 바꾸고 싶었다.

당연히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샐러드와 닭가슴살로 식단을 시작했다.

야채를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고, 닭가슴살보다는 갈비를 좋아했기에 계속 먹기에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3일째, 샐러드는 조금만 먹어도 먹기 싫었고, 닭가슴살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 했기에 '식사를 한다'보다는 '그냥 때운다'라는 느낌으로 억지로 먹었다.

역시 나흘째부터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같은 방법으로 하루에 식사 외의 수분을 섭취하지 않아도 갈증이 나지 않았었던 습관을 이젠 옆에 물을 떠다 놓을 정도로 자주 마시게 바꿨다.


식습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면, 튀김류, 매운 음식을 즐겨 자주 찾던 관성을 끊어내고 싶었다.
이젠 그 익숙함을 버리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듯 샐러드와 닭가슴살로 새로운 식단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쉽지 않았다.
야채를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먹기엔 힘들었다.
백색육인 닭가슴살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3일째 되는 날, 샐러드는 입에 넣기도 싫었고, 닭가슴살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가 아닌 ‘때우는 행위’로 생각하고 억지로 먹었다.
역시 나흘째, 신기하게도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괜찮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됐다.

물을 거의 마시지 않던 습관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하루 종일 물 한 컵 없이 지내도 갈증을 못 느꼈지만, 이제는 물병이 곁에 없으면 허전할 정도다.


반대로, 운동과 식단을 중단해 본 적도 있다.
사흘 쉬었더니, 넷째 날엔 쉬는 게 더 익숙해졌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니 그냥 그렇게 굳어졌다.
다시 습관을 형성하는 데에 또 사흘이 필요했다.


물론 사람마다 이 인고의 시간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짧은 반복이 결국 관성을 만들고, 그 관성이 습관을 만들어 삶을 바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심삼일은 어쩌면 실패의 단위가 아니라 변화의 최소 단위일지도 모른다.
3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은 더 이상 결심할 필요 없는 삶의 일부가 되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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