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쓰다.
서른이 되어 다시 듣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어떤 느낌일까?
사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 정말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가사 속 나는 어떤가.
어렸을 적, 서른이라는 나이는 분명 어른들의 숫자였다.
스스로의 안을 가득 채워 어쩌면 조금 비워내야 할지도 모를 그런 어른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와 맞는 사람인지 한참을 고민한다.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가슴속 추억도 머릿속기억도 너무나도 작기만 하다.
그토록 많은 날을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것은 조각뿐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작사가는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인지도 모르겠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20대와 다르지 않고, 20대의 나는 10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말 그대로 청춘이 머물러있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청춘이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청춘이 익어 황혼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달려야 함을 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비어갈 수도 있지만, 비워낸 만큼 새로운 것을 채워갈 수 있으리라.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이제는 담배 연기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뱉어낸 것은 연기뿐만이 아니라 마음속의 응어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음을 인정하는 아픔.
그럼에도 다시 꿈을 향해 걸어보려는 용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한숨이지 않았을까.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루를 보내며 우리는 수많은 이별을 한다.
어제의 나와 이별하고, 한때 간절했던 꿈과도 조금씩 멀어지고, 익숙했던 감정이나 오래된 습관들과도 묵묵히 작별한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버린 시간과 이별하고, 그 흔적 없는 하루를 아쉬워하며 밤을 맞이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떠나보내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별의 연속이, 나를 조금씩 깎아내고 다듬으며 하나의 단어와 더 나아가 문장을 만들어 간다는 걸 조금 늦게, 그러나 분명히 깨닫는다.
나는 오늘, 그날의 김광석을, 지금의 나를 쓰고 있다.
10대와 20대는, 종이 그 자체가 찬란한 페이지다.
그에 비해 정제되지 않은 잉크로 쓰인 글귀는 눈에 확 띄는 구절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더군다나 군데군데 잉크가 번지기도 했고 심지어는 쓰다 찢어진 흔적도 보인다.
이제 나는 서른의 페이지를 천천히 펼친다.
조금은 빛이 바랜 30대의 페이지 위에는 더 깊고 진한 잉크로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