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RAW N WRIT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주 Mar 07. 2017

아빠의 고집


아빠의 휴대폰: 펜 드로잉/포토샵



우리 아빠는 몇 해 전부터 고집이 무척 세진 느낌이 든다.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친오빠도 그렇게생 각하니 김씨네 모두가 아빠의 고집이 세진 게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아빠가 고집을 피우는 걸 유심히 살펴보면 특별한 게 아니다. 그러니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저런 걸 가지고 고집을 피우시는 걸까?



아무렴,이건 얼마 전 김씨네 대장인 아빠의 이야기이다.

토요일에 내가 부모님 댁에 가니 저녁이 되자 아빠는 내게 이번주 로또 당첨 번호를 확인해 달라고

하셨다. 아빠는 매주월요일에 로또를 사서 1등이 확인되기 전까지 엿새간 충분히 행복한 상상을 하신다. 대한민국에 로또가 생기고 꼬박 십 년을 그렇게 사셨으니 일주일에 6일, 일년에 삼백십이 일, 십 년이니 자그마치 8년 하고도 6개월을 행복해 하신 거다. 일 년에 8할을 넘게 행복해 하는 사람이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정도면 로또 1등 당첨 된 것만큼의 가치는 이미 보상 받으셨지 않나 싶지만 또 로또 1등이랑은엄연히 다르다고 할 테다.

 

"아빠, 새로 바꾼 휴대폰으로 로또 1등 검색하면 돼"

"아니야,내 건 인터넷이 되지 않는 옛날 기종이야"

"무슨 소리야, 갤럭시3면 당연히 인터넷이 되잖아."

"아니야, 내 건 현철이(아빠의 작은 형의 아들)가 휴대폰을 새로 바꾸면서 옛날에 쓰던 걸 준 거라 인터넷이 안돼."


얼마 전까지 IT 강국인 대한민국의 대표 통신사에 다니는 마흔 살 된 직원이 썼던 휴대폰이 인터넷이 안 되는 게 말이나 될까? 


"아빠, 내가아빠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면 어떡하려고?"

"아니야.내 건 인터넷이 되지 않아."

"아빠 그럼 우리 내기할까? 이걸로 인터넷이 되면 나 십 만원 주는 거다?"

"아니야.내 건 인터넷이 안 된다니까. 안 되는 걸 왜 자꾸 된다고 해."


어릴 적부터 동네에 꼭 이렇게 거짓이 100% 확실한 것을 참이라고 우기는 친구들이 한두 명은 꼭 있었다. 그리고나는 참이 100% 확실하다고 생각이 들 때면, 늘상 저돌적으로 들이대서 내기를 유도해 꽤나 많은 것들을 얻었다. 어릴 때는 학종이와 지우개를, 고등학교 땐 매점에서 아이스크림과참치 샌드위치를, 대학교 때부터는 커피 아니면 대개들 주머니에 꼬깃하게 구겨서 가지고 다니는 정도의 현금 천원 이천 원 등이 그것이었다.

아빠의 휴대폰을 받아 들고 환경설정에 들어가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집에 있는 무선 인터넷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의 억지 우기기는 거짓으로 끝나고 말았다. 또 딸에게 십만 원의 채무가 생겼다. 아버지는 검붉게 상기된 얼굴로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며 나에게 만 오천 원을 쥐어주셨다. 


아버지, 저에게는아직 갚아야 할 팔만 오천 원의 빚이 남아 있사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