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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14. 2017

잊을 수 없는 감자의 맛,

또 다른 암스테르담을 기약하며


 암스테르담에서의 시간은 마법에 걸린듯 빠르게 흘렀다.

벌써 마지막이라니. 원더랜드를 빠져나가는 앨리스의 기분은 어땠을까. 

몇 시간 뒤, 다시 색채가 없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시간이 일 분으로 변하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상상을 하며 뭉클한 발걸음을 옮겼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여지껏 관광객 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 머무르는 동안 곁에 항상 있어준 지인이 걱정 아닌 걱정을 내비췄다. "어디라도 관광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괜스레 무의미한 말을 뱉는다.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지인, 양양(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 불리는 별명)과 나의 인연은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벌써 십년이 되었다. 선자령 풍차길부터 프라하의 카를교까지, 따로 또 같이 여행을 함께 하면서 사람에게 진짜 인연이라는 게 있음을 느꼈다. 성별과 나이, 살아 온 환경을 떠나 머릿 속에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아도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수십 년을 살아 오면서 얼마나 있을까?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 책자와 지도를 들고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방문하는 박물관이나 누구나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나의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암스테르담에 머문 나의 시간이 소중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가 향한 곳은, 유일하게 여자들의 성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홍등가>였다. 



레드라이트시크릿(Red Light Secrets)

새로운 곳에 삶이 아닌 여행, 혹은 잠시 시간의 '쉼'을 가지려 떠날 때에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런 내게 사무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서 들었는지 "패티, 암스테르담에 간다며?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는 갈꺼지?"를 언급했다. 말그대로 바꾸면 홍등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도시를 찾아 이곳저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한 번은 들렀다 가는 관광 명소 TOP의 그곳이다. 중앙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한 이 곳은 수많은 성인용품 상점과 Peep Show, 매춘 등의 가게들이 존재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커다란 창문 너머로 자신을 상품화하여 뽐내고 있다. 성(SEX)과 관련한 산업은 어쩌면 인간의 끝없은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에 '돈'이 된다. 나 역시 사소했던 궁금함으로 이 거리에 쏟아낸 유로가 얼마였나.


일명 매춘 박물관. 정부의 관할 아래 합법적으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곳에 매춘 여성들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문직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들이 아닌, 그녀들의 시선에서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그녀들의 일과를 영상으로 상영하기도 하고 한켠에는 그녀들의 일터 곳곳을 보고 체험하고, 직접 창가에 앉아 자신을 찾아줄 고객을 기다리는 그녀들의 위치에 서 보기도 했다.




쇼윈도를 통해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날의 인연을 기다리는 여성들은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또 어떤 생각으로 차디 찬 의자에 앉아 있었을지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비록 천 조각으로 온 몸을 휘감은 채 그녀들의 일상을 따라한다 했지만, 분명 한 점의 생각도 공유할 수 없었다. 창 밖에 걸어가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실제로 창밖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영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게 된다.



Casa Rosso

'붉은 집'을 뜻하는 카사로쏘는 암스테르담>Red Light District> Peep show(sex show)를 자연스럽게 연상한 사람들이 찾는 공연장이다. 수로를 따라 길게 뻗은 홍등가에 곳곳에 존재한다. 핑크빛 코끼리만 따라 가봤더니, 곳곳에 존재하는 건 티켓을 판매하는 곳이고 공연장은 정해져 있다. 공연은 30분에 한 번씩 반복되며 3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무언가 짜릿함을, AV에서나 봤을 법 한 자극적인 상상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 인당 40유로를 내고 15분 만에 공연장을 나오며 "괜히 봤어, 괜히 봤어."를 외쳐댈 것이 틀림없다. 나처럼. 



이 곳은 암스테르담의 오랜 전통인 "관용(Tolerance)"을 즐겨왔다. 

이 곳에서 안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강제적이거나 강압적인 매춘을 방지하기 위해 열린, 그리고 투명한 접근이 이 곳의 운영 목표이다.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협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수많은 경찰력의 보호 아래, 잦은 관찰과 검사를 통해 전문적인 산업에서의 기준을 지속적으로 마련해가고 있다. 


Space cake

중앙역 근처 관광지에 유독 많은 커피숍 불독(THE BULLDOG)은 마리화나와 하쉬(HASH)를 즐기는 장소이다. 영국에서 피시앤 칩스, 독일에서 소세지, 벨기에에서 프렌치후라이를 먹으라고 한다면 암스테르담에서는 스페이스 케이크를 먹어보라고 이 곳 사람들은 얘기했다. 물론 관광객들의 추천이다. 스페이스 케이크는 마리화나 성분이 포함된 브라우니와 달리 하쉬(HASH)성분이 가미된 케이크이다. 특유의 풀 냄새가 케이크에서도 심하게 난다고 하나 실제로 맛을 보지는 않았다. 브라우니나 스페이스 케이크 모두 맛을 본 직후가 아닌, 20-30분 뒤부터 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기에 바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하는 나에게 시간은 빠듯하기만 했다.


벨기에와 독일에서 감자튀김에 포로가 된 나는, 네덜란드의 감자튀김도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지인의 추천에 중앙역 근처에 상당히 긴 줄이 서 있는 가게에 들러 마요네즈와 감자튀김, 그리고 또 하나 이름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이 곳 사람들의 간식이라는 것을 함께 주문했다. 어디를 가든 단일 메뉴를 판매하면서 수많은 고객으로 붐비는 가게들의 주방은 철저하게 분업화 되어 있다. 한켠에 감자를 쌓아두고 커팅하는 사람, 열심히 세척하는 사람, 뜨거운 기름 앞에서 끊임없이 감자를 튀기는 사람, 주문하는 고객의 목소리를 어깨 너머로 듣고 빠르게 감자튀김을 용기에 담아내는 사람. 조리하는 방법에 따라도 물론 맛이 달라지겠지만 포슬포슬함과 매끄러움, 그리고 쫀득함의 중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딱 알맞은 맛의 감자튀김이 진한 마요네즈와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포슬포슬한 영국 감자튀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내게 여태껏 맛본 감자튀김의 TOP 3는 독일>네덜란드>벨기에 인걸로 혼자 순위를 매겨봤다. 





암스테르담은 내게 전혀 무지의 공간 그러나 지인이 머무는 곳, 여유와 젊음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다 였다.

단순한 마음으로 "다음에 또 놀러 올게"라는 말을 지인에게 남기고 한 달 뒤 "양양, 나 그 곳으로 갈게"를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은 유럽여행을 위해 들러가는, 하루면 시내 구경이 끝난다고들 한다. 나의 첫 암스테르담은 관광객으로, 여행객의 시선으로 그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면 나의 두번 째 암스테르담은 조금 더 진하게,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가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가는 날도 오는 날도 장날이었던 여행. 영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난 10초 만에 지나칠 입국심사를 1시간이 넘게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암스테르담은 내게 전혀 무지의 공간 그러나 지인이 머무는 곳, 여유와 젊음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다 였다. 단순한 마음으로 "다음에 또 놀러 올게"라는 말을 지인에게 남기고 한 달 뒤 "양양, 나 그 곳으로 갈게"를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은 유럽여행을 위해 들러가는, 하루면 시내 구경이 끝난다고들 한다. 나의 첫 암스테르담은 관광객으로, 여행객의 시선으로 그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면 나의 두번 째 암스테르담은 조금 더 진하게,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가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2016년 8월, 나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갔던 지난 번과 달리, 얘기만 들었던 도버(Dover)해협을 넘어 보았다.

반나절을 지도를 펴고 돌아다니며 시내 곳곳의 지리를 머릿 속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젊은 암스테르다머(Amsterdamer)들 속에서 불금을 즐겼고 교외의 탁트인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동네 마켓에서 그럴싸한 옷 한 벌도 구입하고, 커다란 시내 중심에 공원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맛있는 맥주와 음식 음악이 넘치는 페스티벌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암스테르담은 7일을 보낸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은 내게 너무 부족한,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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