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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13. 2017

따뜻한 한끼

암스테르담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쇼핑센터에서 나와 담 광장(Dam Square)에 들렀다. 

<쇼핑하기 좋은 곳>, <관광객이 북적대는 곳>, <도시의 중심>이자 연간 수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이벤트를 진행하는 장소로 네덜란드에서도 손 꼽히는 공간이다. 열심히 구겨놓은 종잇장 같이 쭈글쭈글 구겨진 구름이 얼룩덜룩하게 하늘을 가려 우중충한 모습을 만들어주었지만 그 나름의 분위기는 나를 압도시키기에 충분했다. 햇볕이 보이지 않는 잿빛의 시내 한복판에서 무엇을 해야 재미있었다고 소문을 낼까? 두서 없는 말들을 나열하며 걷다보니 하얀색의 핫도그를 판매하는 푸드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예의상 핫도그 하나를 사서 맛을 봤다. 독일의 소시지보다 통통하지 않지만 매끈하고 길쭉하면서 윤기가 있는 소시지는 늘씬하고 커다란 더치 사람들의 이미지를 풍겨댔다. 눈빛이 매서웠지만 불판위에 내가 주문한 핫도그를 만들 재료들을 나열하던 아저씨는 입을 열자 그저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저씨의 더치 언어의 악센트가 섞인 채 "에" "에"를 두 세 단어에 한 번씩 추임새로 넣은 영어는 그저 평범한 모양새와 맛을 갖춘 핫도그에 유쾌함과 웃음의 맛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는 결국, 핫도그는 뭘 해도 뭘 집어 넣어도 언제 어디에서 먹어도 맛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최고, 최다, 최대의 이벤트 장소라는 이 곳에서 어김없이 이벤트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특별한 행사가 없을 것처럼 버려져 있던 무대는 삼십 분이 채 지나지도 않아 삽시간에 사람들이 너나할 거 없이 모여들었다. 살짝 빗방울이 흩날려 스치듯 지나가려고 했던 우리도 궁금함에 무대 주위를 채웠다.

도시 한 복판에서 로데오라니.

자유롭게 참가 신청을 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무대 중앙에 소에 올랐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쩜 그리 비범한 복장들인지, 바나나부터 거리의 여인 복장을 한 남성, 본인이 히어로라도 되는 듯한 꿈을 한껏 뽐낸 어린아이까지. 다시금 생각해보니 어린이부터 나이지긋한 분들까지 모두 남성들이었다. 사회자의 물음에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고 소의 등 위에 오른 사람들은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나머지 한 손 만으로 소의 등에서 버텨야만 했다. 뭐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을법한 게임이나 환호하고 반응하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신났다.  




지인의 플랏매이트가 쉐프로 있는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두 발 달린 자전거를 못타는 두 발 단 나로 인해 우리는 담 광장에서 트램을 타고 움직여야만 했다. 교통비가 저렴하지 않은 유럽에서,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자전거를 타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낭비이자 삶을 뚱뚱하게 하는 느낌이다. 네덜란드를 적어도 이틀에서 삼일은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1일 패스 교통 티켓(1일: 15유로) 을 구입하느니 중고 저렴한 자전거를 사거나 대여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면서 더욱 '돌아가면 자전거를 배워야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두 어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다. 삼십 대의 나란 여자란.


트램에서 내려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서점, 지인의 집 고양이 코스모를 빼다 박은 모습


암스테르담 시내 한적한 곳에 위치한 식당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홀과 주방, Bar가 한눈에 보이는 옆으로 탁 트인 공간이다. 천고가 높아 여유가 느껴지고 대리석과 화이트 톤으로 정돈된 공간에 오로지 조명과 어두운 목재 가구들이 편안하면서도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날림이 아닌, 왠지 묵직함이 느껴지는 곳. 급하게 식사를 끝마치고 떠나야 하는 키오스크나, 메뉴판 여러 번 펼쳐보며 후덜덜한 가격에 눈치 봐야하는 별 여럿의 훈장을 단 레스토랑 등의 의식이 필요 없는 느낌이다. 지인의 친구 둘이 더 오기로 했고, 살짝 먼저 도착한 우리는 한켠에 나무 향이 은은히 풍기는 커다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마시며 일행을 기다렸다.



메뉴를 미리 봐둘까? 했는데, 지인의 플랏매이트가 "이 곳에 버거를 먹으러 와"라고 했다는 말에 단순한 homemade 버거샵인줄 알았으나, 생각 외로 메뉴가 꽤 다양했다. 결국 약속시간을 당연하게 지키지 않는 친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고, 친구들이 온 이후에도 메뉴를 고르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가. 그래도 가게 이름을 건 메뉴가 시그네쳐가 아니겠나 싶어 George Bistro 버거를 주문했다 나는. 아는 사람이 있다는, 그것도 자그마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인 둘이, 엄청난 메리트를 앉고 우리는 맛있는 수프와 디저트 등을 제공 받았다. 한 병, 두 병. 와인을 계속 주문하며 영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이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너무 느리지도 않았고 조급하게 자리를 비워야 할 정도로 촉박하게 시간이 흐르지 않아 그저 맛있는 음식과 와인, 사람들과의 순간에 집중했다. 

프랑스 억양이 사랑스러운 아밀리

뒤늦게 나타난 지인의 친구들은 처음 보는 내게도 상당히 호의적였고 몇 마디의 대화 속에서 공통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자 우리의 대화는 멈추어질 시간이 두려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디자인을 공부하러 네덜란드에 온 귀여운 얼굴에 내가 탄성을 자아낸 탄력있고 아름다운 엉덩이를 가진 <아밀리>는 한 학기를 교환학생으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로 곧 떠난다고 했다. 포르투갈어를 공부하며 브라질에 머물렀던 나의 빛바랜 무용담들을 꺼냈고, 그녀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나의 이야기에 취해 프랑스 사람들의 "-숑" "-숑" 거리는 상당히 귀여운 추임새로 응답했다. 또 한 명의 친구는 네덜란드 토박이였다. 훤칠한 키에 금발의 훈남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며 한국요리에 대한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망치 아줌마를 알아?


유투브에서 한국 요리 동영상으로 전세계 한식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아주머니의 닉네임이 망치였다. 이 말 한마디에 속도감 있게, 그와의 대화는 찰지게 이어졌고 한국인 특유의 영어 강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망치 아주머니의 몇몇 대사들을 내가 따라하니 한바탕 웃음이 이어졌다. 내가 친화력이 좋은 사람인걸까에 대한 의문을 항상 하면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대화가 끊이질 않는 걸 보면 가끔은 내가 친화력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영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각자의 앞으로의 미래를 공유하며 그렇게 시간을 소중히 다뤘다. 나중에 일이 모두 끝난 쉐프 율리안(지인의 플랏매이트)까지 가세하여 그렇게 우리는 조금의 술을 더 곁들인 밤을 보냈다.


한 밤 중에 우버(Uber)를 타고 돌아왔다. 

도착할 곳을 지정하지 않고 택시를 부른 덕에 택시비가 얼마나 나올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우버를 이용했으나, 나중에 돌아와 카드 요금을 확인했을 때 걱정했던 거에 비해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우버는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더라도 항상 출발지와 도착지를 미리 지정해두는 걸로. 그래야 괜한 마음 졸임을 하는 낭비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본 적이 없는 우리의 이튿날 아침은 좋게 말해 "더치"스러웠다.


빵 + 커피 + 치즈 + 햄


보통은 빵과 치즈인데, 햄까지 있으니 "근사한 더치"라고 해도 되겠지?

우리는 집에 가서 먹으라며 전 날 율리안이 식당에서 랩으로 돌돌 말아 건네준 바게트 빵을 오븐에 구워 일용한 양식으로 활용했다.



돌아가는 날 야속하게 하늘이 맑잖아.

바람도 곧 잘 불고, 햇볕이 그리 강하지 않으니 '이 어찌나 행복한 하루인가'라며 탄성을 자아내면서 걸었다. 근처에 있는 브루어리(Brewery)에 들러 가볍게 오전의 한 잔을 즐겼다. 네덜란드에 오기 전에는 이 곳의 맥주를 떠올리기만 하면 <하이네켄>만 생각했었다. 어쩜 그리 단순하고 무식한 발상이었는지. 맥주 천국 독일과 벨기에 옆에 있는 이 곳도 다양한 로컬 브루어리들이 존재하고 에일과 라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음을 나는 정확히 간과했었다.



테라스 좌석이 모두 차서 우리는 가게 옆 수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Don't sit there"라며 하루에도 스무 번은 이 멘트를 뱉어내고 있다는 듯한 기계적인 어투와 무표정의 직원의 말에 "Sorry, We didn't Know it"를 연발했다. 오전부터 몸이 부숴져라 맥주를 마셔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테라스로 옮겨 가 끝에 겨우 붙어 서서 남은 맥주를 마셔야만 했다. 왜 수로 쪽에 음료를 가져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꼭 이렇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보는지에 대해 챙피함을 최소화하고자 "스미마셈, 스고이" 등의 유치하면서도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일본어들을 투척하며 한국인이 아닌척을 했다.


XXX


암스테르담 도시의 상징이기도 한 XXX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러가지 설이 있고, 우선적으로 500여 년 전부터 St. Andrew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3無의 의미로 홍수와 불, 흑사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under world의 것들 중 도시 내에서 허가하는 매춘, 마약 등의 것을 뜻하기도 한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으나 수 일을 여행하는 나로서는 정확한 의미를 알기에는 부족했다. 궁금함도 잠시, 나와 지인의 더 큰 궁금증을 달래주기 위해 <Sex Show>를 보러 <Casa rosso>로 향했다.



트램을 타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짧지만 강한 이번 나의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정한 곳이 중앙역 근처이므로.

갈까 말까를 망설였던 <Red Light District>에 들르기로 했다. 대개 남성들이 열광한다는데, 나는 왜 그런지 몰라도 얼마나 암스테르담이 자유로운 도시인지를 얘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그 곳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암스테르담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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