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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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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16. 2017

나의 빛 바랜 독일 이야기



작년 가을, 일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영국 생활에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모를 기호를 붙인 채 한국에 돌아왔다. 내 인생에서 멈춰있던 한국에서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입으로 차근차근 나열할 수 없는 수 많은 생각이들었다. 앞으로 해야 할 <무엇>에 대한 것들은, 직업병처럼,갑작스레 귀국하게 된 시점부터 이미 생각하고 나열해서 일정을 만들어뒀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은 없었다. 대신 그 동안의 게으른 내가 ‘다음에 해야지. 어차피 시간은 많아.’라고 합리화하며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 둘 서둘러시작하고, 또 매듭을 짓는 일을 반복했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나는 한 명의 인간에게 둘 이상의 자아가 있다는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안에는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서른이 넘어가며 자기 노출 빈도를 높여가는 자아가 있고 그게 바로 게으름이라는 아이다. 이 아이가 간혹 내가 시간에 쫓겨 방황할 때 내가 가진 일들의 목록에서 몇 가지 끌어내린 게 있었는데, 유독 나의 개인 생활과 여가, 가족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일이 먼저이고, 회사가 먼저이고,주변 사람들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정작 나에 관한 일은 “나중에 해도 돼”라며 매정하게 나와 가족을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이년 전에탈고라는 것을 했던 나의 이야기 역시 “나중에”라고 하며외장하드 깊은 곳에 버려두었다.




나는 독일에서 지내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소중한 인연을 만났던 시간을 글로 적어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생각을 글로 적었다. 그리고책이라는 형태가 갖춰질 수 있도록 페이지를 나열하고 목차도 만들었다. 불과 한달 전까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장작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책을 출간하기 위해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출판 편집 디자인 수업을 수강하고 책 표지에 넣을 그림도 그려봤다. 자비로 책을출간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전자책 출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던 도중, 같은 수업을 들었던 지인이출판사에 원고를 가지고 출판 의뢰를 해 보라고 권했다. 



요즘은 책이 참 다양하다.

그리고 소위 말해 “이게 책이야? 나도쓰겠다.”라는 말을 규모가 있는 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 말에 어쩌면 나는 위로를 받고 “이게 책이야? 나도 쓰겠다.”라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열 군데가 조금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했다. 원고를제출하는 것은 쉬웠다. 출판사 홈페이지마다 원고를 등록하는 곳이 있기에 그 곳에 내 글이 담긴 파일을저장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났다. 결과는 참패였다.어떠한 곳도 내 글을 책으로 내줄 수 없다고 했다. 하나같이 출판사의 방향과 출판물이 맞지않다는 언급이 보였다. 출판사의 방향과 맞는 원고를 <나>라는 사람이 다시 쓰면 “당신의 글이 마음에 듭니다. 출판을 진행하시죠.”라는 시원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니면 출판사의 방향이라는 것에 글을 구겨 넣어 거기에 맞는 원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원고는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라는 퇴짜의 레파토리 이연타를 맞게 되지는 않을까?



내가 가진 꿈에 대해 응원하는 스페인 친구 가리짱. 독일에서 일본어 회화를 하며 만난 인연으로 얼마 전 한국에 들렀다. 지금은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세상에서 유독 나에게만 냉정하고 잔인한 것 같은 엄마는 “개나 소나책을 내는 줄 알아?”라며, 신입사원 입사 지원서들이 줄줄이서류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던 시절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제는 출판사에서 서류의 탈락을 맛보는 내게 위로를 건넸다. 


가만 있자, 엄마의 말을 풀이하자니 

“개나 소는 책을 낼 수 없다.”

“책을 낼 수 없으면 개나 소다.”

“개나 소가 아니면 책을 낼 수 있다.”

“책을 낼 수 있으면 개나 소가 아니다.”


개나 소가 되지 않기 위해 언젠가 책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 년 이라는 시간에 어쩌면 많은 부분이 빛 바래진 나의 독일 이야기기를 브런치에 등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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