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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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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7. 2017

휴대폰, 그리고 독일 3종 세트



휴대폰

 데이터 칩만 교체해서 어느 나라에서든 하나의 휴대폰으로 쉽게 현지 번호를 사용할 수있다니. 세상 참말로 좋아졌다. 시간 여행 같지만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휴대폰 시장의 커다란 괴물이었을 적에 나는 브라질에 머물면서 그 곳에서 사용할 휴대폰을 장만해야 했다. 혹시나해서 가져갔던 내 모토로라 휴대폰은 그 곳에서 사진이나 찍는 카메라로 전락했었다. 지금의 세상이 온다는 것을, 나 같이 틀에 박힌 문과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몇 년 전만해도, 그 몇 년 전이내가 처음 유럽 땅을 밟아봤던 런던올림픽이 열린 2012년이다. 그 때만 해도 해외에 나가서 현지 유심(USIM)을 사용하기 위해 나는 ‘컨트리락Country lock’이라는걸 통신사에 연락하여 해제 했어야 했다. 국가간에 사용하는 단말기의 이슈라고 했는데 이제는 새로 출시되는 휴대폰들은 제조 공장에서부터 컨트리락이 해제되어 있어 어딜 가나 그 나라의 유심 칩 하나면‘로밍’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생활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 나라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소통의 반열에 끼워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 관공서에서 서류를 등록할 때, 하다 못해 마트에서 포인트 카드를 발급받을 때에도 전화번호를 남기게 되니 말이다. 퇴근 하자마자 짐 가방을 숙소에 내려두고 시내로 가서 유심을 구입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시내라고 말하고 찾아간 곳이 프랑크푸르트의 제1의번화가이자 상점가인 ‘자일 거리(Zeil)’라고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복합 쇼핑센터 마이자일(My Zeil) 



대형 가전 마트인 자툰(Saturn)의 휴대폰코너에 가서 유심이 한 가득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통신사별로 데이터나 통화량에 따라제 각각인 유심을 보고 있노라니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내 옆을 지나치는, 이 곳의 직원처럼 느껴지는(검정색 유니폼 같은 티셔츠를 입었고 가슴팍에 명찰을 달고 있었음)키가190cm는 쉽게 넘어 보이는 남자에게 추천을 해달라고 하고자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만>이라고 했을 뿐인데 그는 당황하는 표정으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삼 분 남짓 같은 자리에서 괜한 유심들만 매만지며 기다렸을 때다. 방금 전의 남자와 같은 상의를 입고 턱수염이 제법 덥수룩한 다른 남성이 나타났다.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물어오는 남성은 이전의 남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이 목소리와 행동에서 나오는 사람이었다. 그는방금 전에 내가 만났던 직원은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여, 자신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나를 도와주겠다고 다가온 남성의 유니폼을 보니 명찰 옆에 국기 그림이 여러 개 있었다. <영국>,<스페인>,<프랑스>. 이 국가들의언어를 모두 말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프랑크푸르트, 그중에서도 관광객이 많은 번화가에 대부분의 상점들은 영어나 그 외 유럽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걸 보니 독일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겠다 잠시 생각했다.



통신사가 여럿이지만 나는 내 눈에 가장 대리점이 많이 눈에 띈O2(오투)라는 통신사의 선불제 유심(SIM)을 선택했다. 매월 충전카드를 구입해서 쓸 만큼 사용하는 게 보편화되어 있어 가격은 매 월 15유로(한화 1만8천원 정도)로 통신비 사용이 가능했다. 유심을 구입할 때에는 신분증이 필요하다고하여 여권을 제시했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온 여권이 그러지 않았을 때의 헛수고를 막아줬다. 그리고 십 분 정도 지나서 드디어 독일에서의 전화번호가 생겼다. 무료 문자가 수백 건이 제공되고 통화가 수백 분 가능하다고 해도 그럼 뭐하나. 정작 독일에서 문자를 보낼 사람도,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수십 분씩 통화를 할 사람도 내게는 없는데. 무료 통화와 문자를 사용하기 위해 어서 연애라도 해야겠다.


독일 3종 세트

독일 하면 가장 단순하게 머릿속을 스치듯 생각나는 먹거리가 무엇이겠는가. 

나에게는 소시지와 감자 튀김, 그리고 맥주였다. 한 평생 인생에 딱 두 가지의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감자 튀김과 맥주라고 말할 여인이다. 팔팔 끓는 기름에 갓 튀겨낸 노란 빛깔의 고소한 기름 내음을 머금은 감자 튀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메인 요리옆에 곁들여진 사이드 메뉴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의 대단함을 높이 산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세상 어디에도 평범한 직장인이자 친구이자 동료인 내가, 우리 엄마아빠에게는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듯 말이다. 참고로 세 가지의 먹거리를 선택하라면 감자튀김에맥주, 거기에 커피를 얹겠다. 어쩜 내가 이렇게도 끔찍하게좋아하는 먹거리의 성지가 바로 내가 살아보겠다고 선택한 나라인지.


소시지

실체 없이 소문만 무성했던 독일 소시지를 난생 처음 맛보았다. 프랑크푸르트의 구(舊)시청사가 있는 뢰머광장Römer 앞에 작은 소시지 가게에서다. 햇볕보다 강한 윤기를 뿜어내며 발그레하게 누워 있는 소시지가 손바닥만한 크기의 바게트처럼 보이는 ‘브뢰첸(broetchen)’이라는 빵에 끼워져 내 손에 들어왔다. ‘이게 독일 소시지구나.’ 거대하고 통통한, 그리고 씹으면 톡 터질 것 같은 건강미 넘치는 모양새에 놀랬다. 그리고 함께 주문한 생맥주. ‘필스(Pils)’라고 독일에서 부르는생맥주에 다시 한 번 놀랬다. 맥주는 작은 잔과 큰 잔 중에 선택해서 주문을 했다. 물론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나는 독일에 와서의 첫 잔은 예의를 갖추어 큰 잔을 선택했다. 내가 생각했던 큰 잔은, 맥주 잔이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 더 이상‘크다’의 의미를 상실하였다. 1리터에 가까운 독일의 커다란 맥주는 정복하고 싶은 산이자 사랑에 빠질수 있는 마성의 매력이었다. 왼손에 소시지를, 오른손에 거대한 맥주잔을 쥐고 있는 동안 만큼은 더 이상의 부러울 게 없었다. 확실했다.



‘나는 소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지금껏 내가 먹어왔던 소시지는 대체로 퍽퍽하고 맛이 없었기에 내가 소시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왔었다. 어릴 때나 도시락 반찬으로 가끔은 엄마가 넣어주는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든, 대학시절 학교에서 일일주점을 연다고 하면 마트 진열대에 있는 가격 저렴한 소시지들을 쓸어와 케첩과 고추장을 들이 붓고 볶아대던 소시지든지. 


그런 내가 이상했다. <앙> 한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소시지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겉이 그렇게 바삭 할 정도로 매끈하고 분명 처음 한 입 물었을 때 ‘톡’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거참 이 보드라움은뭘까 싶었다. 따뜻하고 고소한 육즙이 나의 독일 소시지 입성을 기다렸다는듯이 탄성을 자아냈다. “아, 맛있다.” 이말을 연거푸 네 번은 넘게 뱉어냈던 걸로 기억한다. 독일에 있는 동안 어딜 가나 들러서 소시지를 먹었고,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들을 맛보았지만 내게는 첫 소시지 입성지가 최고의 맛으로 남는다.




맥주

나를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맥주광(狂)>이다. 몸이 차디 찬 나에게 맥주는 독이라고 하던데 가지 말라는 길에는 왜 이리 발걸음이 향하는지, 나는 맥주에 애정이 상당하다. 수천 종류의 맥주를 마셔보고 철두철미하게 맛의 차이를 잡아내는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이 맥주와 저 맥주의 맛을 표현하는 감성은 풍부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에일(Ale) 보다는 라거(lager)계열의 맥주의 애착을 보인다.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일본에 들러 기린, 아사히 등의 생맥주를 마실 때면 톡 쏘는 목 넘김의 자극을 즐겨왔다. 맥주 맛을 따라 독일에 온건 물론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독일은 최대 라거 맥주 생산지이다. 내가 어릴 적에 TV에서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라라라~라라라~라거’를 외치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우리나라의 맥주들도 라거 계열이니 어쩌면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젖어버린 입맛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의 입맛에 독일의 라거 한 잔은 한 줄기 성수로 다가왔다. 짜릿할 정도의 청량감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동안의 알싸함이 식욕을 자극하고 순간이 즐거워지는 맛이었다. 나도 모르게 벌컥벌컥 마셨다. 아니, 내가 들이킨 게 아니라 맥주라는 녀석이 내 목으로 들어왔다.


<빈딩(Binding)>은 프랑크푸르트 로컬 필스너로 뢰벤브로이나 호프브로이 등의 다르느 지역 맥주보다는 맛이 덜하다.



감자 튀김

이색 체험은 항상 낯설지만 설렘이 있다. 내게는 감자튀김이 그렇다. 분명나는 지금까지 먹은 감자만 상상해도 몇 박스의 감자 상자를 짚어 삼켰을 만큼 감자튀김을 먹어왔다. 갓 튀겨져 나온 감자튀김은 성인 남자의 약지 손가락 정도의 굵직굵직하고 길이가 긴 것은 20cm 가 족히 되어 보인다. 하나를 입에 담자 그윽한 기름 냄새와 따듯함이 밀려왔다. 거기에 신선한 충격은 마요네즈였다. 독일에서 감자튀김을 판매하는 곳은 어디에나 마요네즈와 케첩이라는 두 녀석이 공존한다. 어떤 이는 케첩을, 어떤 이는 마요네즈를, 또 어떤 이는 두 녀석을 섞어서 함께 먹기도 한다. 물론 나처럼 소스 없이 감자만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내가 처음 접한 이 소시지가게 앞에는 커다란 마요네즈와 케첩 통이 가게 앞 스탠딩 테이블에 매달려 허공에 하늘거린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케첩과 마요네즈는 이루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마요네즈 통 앞에 줄을 서서 감자 튀김 접시에 펌프질을 해가며 뽀얀 마요네즈를 담았다. ‘저게 과연 무슨 맛일까’ ‘기름진 감자 튀김에 기름 여왕 마요네즈가 왠 말인가’싶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마요네즈를 푹 찍은 감자 튀김은 나에게 치킨에 맥주, 삼겹살에 파절임보다 밀착한 궁합을 보여주었다. 하인즈(Heinz)의 마요네즈는 우리나라의 마요네즈 시장을 독식하고있는 그것과 맛이 확연히 달랐다. 물기가 있다기 보다 탱탱하고 묵직한 게 달랐는데 이런 점이 더욱 감자 튀김과의 궁합을 맞춰준 게 아닌가도 싶다.



과연.


소문만 무성했던 소시지와 맥주, 감자 튀김은 정말이지 ‘독일 오길 잘 했네’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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