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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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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7. 2017

사람을 사귀는 일




도착하자마자 첫 모임

 사진을 배우거나, 취미로 요리를 시작하거나, 중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면 어디에서 정보를 찾을까. 물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가 아닐까 싶다. 독일에 오기 전에 나 역시 몇 군데의 카페와 홈페이지를 찾아 보았다. 그중 코트라(Kotra)의 독일 무역관에서 운영하는 카페는 독일에서 취업이나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커뮤니티이다. 취업 정보와 생활 문답, 그리고 정모나 번개가 이루어 지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독일로 떠나기 직전 마침 프랑크푸르트에서 번개 모임을 한다는 게시글을 보고 ‘옳다구나’하고 댓글을 달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집결지인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백화점 갤러리아 정문으로 그다지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플랏메이트 홍차 공주를 억지로 동행시켰다. 한국인 10명 정도의 모임이었고 스무 살 중반부터 서른 살 후반까지의젊은 무리였다. 어학 연수생 동생, 독일에서 학교를 나와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 함부르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도시를 바꾸고 싶어 이직을 했다는 언니, 독일기업에서 근무하고 싶어 대한민국 취업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바로 독일에 왔다는 학부 졸업 예정자까지. 다양한 모습이었다.


조용히 무리의 발길을 따랐다. 서울로 치면 가로수길이나 삼청동 정도의 맛집과 카페,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눈에 띄는 <보른하임(Bornheim)>으로 자리를 옮겼다. ‘뭐먹을까요?’‘어디가 좋을까요?’ 처음 만난 낯선 이들은 흔히하는 자신을 꽁꽁 숨긴 대화만 빙빙 돌려 해댔다.


‘오늘은 비가 오니 종로 빈대떡에 가서 녹두 빈대떡에 막걸리나 한 잔 하죠.’라고. 이 곳이 서울이었다면 여유롭게 외쳤을 나이지만. 여기는독일이다. 게다가 난 이제 겨우 이 곳에 발을 디딘 지 닷새인 이방인으로서 맛집을 운운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나는 조용히 무리의 발걸음을 따랐다. 예약을 하지 않은터라 어디에 가도 토요일 저녁에 열명의 인원을 수용해줄 만한 곳은 없었다. 길에서 추적추적 빗소리를들으며 맥주나 한잔씩 해야 하나? 싶을 때쯤에 꽤 근사한 태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자리가 난지 몇 분 안되어 직원들이 분주하게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맛있는 태국 요리와 아직은 낯 설은 사람들의 만남은 ‘이게 뭐지?’라고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곳에서 묵묵히 나는 구운 오리고기를 커리에 찍어 먹고 테이블에 하나씩 제공되는 거대한 밥 그릇을 옆에 끼고는 신나게 먹어댔다. 어색한 분위기는 밥 한끼와 곁들인 술 한 잔씩에 슬며시 녹아 내렸다. 신나게 이야기 꽃을 피워나갈 쯤에 십오 년 이상을 독일에서 살았다는 두 명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독일은 십 년 이상 살 곳은 되지 않아.
이곳에 내 뼈를 남기고싶지 않아.


독일에 온지 닷새밖에 되지 않은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새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모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대한민국 사람은 어딜 가나 ‘인맥’을 무시 못한다는데, 친척도, 지인도 없는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대학교 동문을 만난 게 아닌가. 수십 개의 외국어 학과가 있는 나의 모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한국 기업의 독일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친구를 만나다니. 이 후로도 이 모임의 맴버들에게 독일 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르기도 애매한 초라한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이사할 때 흔쾌히 퇴근길에 들러 자동차로 이삿짐을 날라 주셨던 금호 타이어 유럽 법인에 근무 중이신 트라움팍(Traum Park, 한국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님의 고마움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거주지를 등록하다

플랏메이트인 홍차공주는 나에게 행운의 요정이었다. 요정의 행색은 아니지만 어학 연수로 이웃 도시 쾰른(Koeln)에서 살아본 독일 유(有)경험자로 그녀는 내게 생동감 넘치는 생활 정보들을 쏟아 냈다. 


킴, 우리 꼭 안멜둥 해야 해요.그거 안 하면 나중에 문제 생겨요.


독일에서 1개월 이상 머무르는 사람이라면 ‘거주지 등록’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안멜둥(Anmeldung)’이라는 것을 관할 관공서에 여권을 가지고 가면 된다. 간혹 렌트한 집의 임대 계약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웬만하면 여권 한 장으로 가능하다. 오전 근무를 하지 않고 아침 일찍 관공서에 갔다. 역시나 독일 최고의 상업도시, 그곳의 공무원들의 영어는 청산유수였다. 거주지 등록 담당 코너의 대기표를 뽑고 앉아 삼십 분쯤을 있었을까. 전광판에 내가 가진 대기표 번호와 찾아가야 하는 창구 번호가 나왔다. 여권과 함께 작성한 신청 서류를 직원에게 주고 십분 쯤이 흐르니 거주지 등록이 되었다는 종이 한 장을 건넨다. 드디어 정식으로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서류 한 장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수도 있다. 거주지를 옮길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하는 전입신고처럼 ‘움멜둥(Ummeldung)’을, 독일이라는 나라를 떠날 때에는 ‘압멜둥(Abmeldung)’을 해야한다.


 거주하는 사람이 적은 도시에서는 거주지 등록을 하면 그도시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가득한 쿠폰북(coupon book)이나 도시 지도, 생활 정보 책자를 나눠주기도 한다지만, ‘쿨(cool) 내’ 나는 프랑크푸르트는 아무 것도 없다. <영화관 1+1 이용권>이나 <미술관 입장료 할인> 등의 실속 있는 쿠폰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조금의 기대는했는데 말이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타인에게 사탕 하나도 받지 말라’는 것을 내게 강조 하셨다. 분명 그런 가정교육을 받아왔는데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실 기세의 내가 되어버린 건 세월의 흔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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