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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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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8. 2017

유학생

낯선 땅에서 유학생을 만나는 건 여러모로 큰 자산이다.





계좌 개설도 만만찮구나

독일에 내 전화번호가 생겼으니 이제 은행 계좌가 필요하다. 이 곳에서 일을 하지 않고 머무르면서 여행을 다니고 하는 생각만을 가졌더라도 방을 구할 때는 계좌를 제시해야 한다. 호스텔이야 아무런 독일에서의 고유 번호들을 만들지 않아도 충분히 머무를 수 있지만, 호스텔 생활이 한 달이면 일반적인 방을 하나 구해 머무는 것의 두 배는 족히 넘는 비용을 오로지 숙박으로만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화폐>의 세계의 속박을 피할 수 없는 일인으로 독일에서 생활하려면 계좌를 개설하고, 또 현금 카드를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하물며 온라인 사이트에서 구매를 할 때도심지어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하고 현금 입금 또는 현금카드 사용만 가능한 곳들이 있다. 독일에서 일을 하고 급여를 지불 받거나, 쇼핑한 제품을 환불 받게 될 때나 은행 계좌가 필요하다. 현지에서 받은 급여나 돈이 있다면 인출할 때에도 한국 계좌의 돈을 인출하는 것보다 수수료가 덜 드니 소소하지만 훗날 태산이 될 수 있는 금전적 이익도 적지 않다.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하니 잉크도 마르지 않은 <거주지등록증>을 들고 계좌를 개설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프랑크푸르트 <콘스타블러바헤 역> 앞에는 <도이치방크 Deutch Bank> 부터 <슈파카세 Sparkasse>, <코메르츠 방크Commerz Bank> 따위의 다양한 은행의 지점들이 함께 몰려 있다. 그러니 은행과 관련한 일은 이 곳에서 보는 것이 가장 편하다.


독일의 대표 은행 중 하나인 <코메르츠 방크> @라이프치히, 독일


나와 홍차공주는 <코메르츠 방크 Commerz Bank>의 계좌를 만들기로 했다. 은행 저마다의 고객 유치를 위한 프로모션이 한창이었는데, 세상에, 계좌를 개설할 때에 추천인을 함께 적으면 추천인과 가입자 모두에게 여행가방 또는 현금 25유로(3 만원 정도)를 지급해 준다는 게 아닌가. 독일 번개모임에서 알게 된 대학 동문인 남동생이 추천인으로 해달라고 하길래 그렇게 우리는 그에게 50유로를 주는 셈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은행에서 지급하는 상금과 선물은 추천인에게 모두 지급이 되었다는 것이었고, 정작 나는 25유로를 구경하지도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내 귀에 들어 온 이야기이기에 돈 몇 푼에 거지 발싸개 같이 시원스럽지 않은 누이로 남을까 고이 기억을 접어 두었다.


은행에서 직접 계좌를 개설하지만 당장 계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규로 계좌를 발급받기 위해 여권과 거주지 등록증이 필요하다.거주지 등록증에 명시된 주소로 은행에서 카드와 서류 등을 보내고, 그 우편물에 있는 대로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일련의 수속을 마쳐 야 비로소 계좌가 활성화 되고 빛나는 은행 카드를 가지는 영예를 얻게 된다. 그 기간이 꽤 걸린다. 우편물 배송에 착오가 생길 경우에는 기간은 한달, 두 달 마구 흘러간다. 심지어 독 일을 떠날 때까지 받지 못해 계좌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발생한다. 나처럼.



프랑크푸르트 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진 울창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가 좋다.



떠나가는유학생을 만나는 건 큰 자산

독일로 유학을 오는 한국인에 대부분이 의대와 공대, 음대생이다. 최근에는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교환학생으로 오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대학교 자체를 독일에서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음대생의 비중이 으뜸이다. 내가 일하게 된 곳에서도 음대생으로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고 곧 한국으로 귀국하는 직원이 있었다. 나와 나이가 같아 금새 편한 사이가 된, 피아노 전공인 그녀에게서 나와 홍차공주는 앞으로 해야 할 업무를 전해 받았다. 앞서 한 분이 그만두고 급하게 회사를 나가는 바람에 혼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부터 악기만 다루던 사람이 이 곳에서 메일을 보내고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고되다는 둥, 한 번 열린 수다의 장은 닫힐 기색이 없이 커져만 갔다.


업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회사가 돌아가는 이야기도 솔솔 새어 나왔다. ‘아! 이런 얘기는 나중에 따로 편하게 하는 게 낫겠어.’라는 여자 셋의 결론이었다. 어딜 가나 상사 뒷담화로 하나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있지 않나. 그것도 젊은 여자 셋이니 이야기 불꽃은 까만 밤을 하얗게 만들 여력이 충분했다. 할 이야기도 많고 짐도 많아 필요한 세간도 가져가라며 주말 저녁 삼겹살의 밤으로 초대해주었다. ‘뭘 낯선 곳에서 괜한 짐이 되게 물건을 새로 사니.’라는 신념의 공통 분모를 가진 나와 홍차 공주에게 귀가 홀릴듯한 이야기였다. 물건을 새로 사는 것은 짐이 되고 새 것이 아닌 물건을 가져오는 건 짐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불필요한 소비에 대한 반감이었던 것으로 우리의 생각은 정리가 되었다.




저녁 초대를 받은 토요일, 나와 홍차 공주는 늦은 아침을 전 날 마트에서 잔뜩 사다 둔 무화과와 커피로 대충 챙긴 뒤 책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메쎄(Messe)>에 들렸다. 그리고는 이십 분 남짓 되는 거리를 걸어 중앙역 근처에 있는 아시안 마켓 <유안파(Yuan Fa)>에 들렀다. 오늘 저녁의 초대자가 요청한 쌈장을 구입해야 하는 미션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샛노란 간판이 눈에 띄는 꽤나 커다란 가게 안에는 중국과 태국, 베트남, 일본 등지의 식재료들이 가득했고 라면이나 고추장, 냉동 쌀떡과 만두 등의 한국 식품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200g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쌈장을 1.5유로(한화 2천원)에 구입했다. 소주나 막걸리 등의 주류, 과자 등을 제외하면 나름 식재료들의 가격은 8천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낯선 땅에서 구입하기에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왠만한 와인 한 병의 가격보다 값 비싼 소주와 막걸리는, 독일에 머물면서 나를 <와인성애자>로 변모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이유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금 떨어진, 트램을 타고이십 여 분을 지나니 <오펜바흐(Offenbach)>라는 도시에 다다랐다. 정류장 앞에 그녀가 마중을 나와 주어 집을 찾는 길이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정류장 바로 오른편에 있는 마트에서 함께 장을 봤다. 


마트에서 삼겹살을 파는구나!


쌀쌀한 저녁에 환풍 시설이 없는 주방에서 창문을 열어 둔 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새로운 정보였다.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폭은 좁지만 두툼하게 썰어져 팩에 들어있는 모습이 신기했다.삼겹살은 유럽에서 먹지 않는 부위라고 해서 한국에 수입이 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들도 전부 수출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불과 한 달도 머물진 않은 독일 땅에서 막연하게 생각나던 삼겹살과, 우리의 밤을 녹여줄 와인을 두 병 사서 음대생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플랏(Flat) 형태로 살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해외에 나가 집을 구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여러 방이 있는 집 한 채에 각각 방을 갖고부엌이나 화장실, 거실 등을 함께 쓰는 모습이다. 예전에 미국 시트콤인 ‘프랜즈’에서 나왔던 모습이지만 시설이나 플랏 메이트들의 분위기가 결코 비슷하지는 않다. 그녀의공간에서 나와 홍차 공주는 오랜만에 맛보는 삼겹살을 물리도록 집어 삼켰다. 집을 새로 구하기 전에 임시로 한인 교회 목사님 댁에 머무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지만 다시는 없을 것 같다. 화장실에 물 내리는 소리도, 방에 불을 켜는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도 이 곳에서는 왜이리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지. 눈치 아닌 눈치를 느끼고 나의 특기인 과감하게 깔깔대고 웃는 것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목사님 부부와 나, 그리고 홍차 공주까지 분명 네 명의 한국인이 있는데 어색함과 보이지 않는 광선의 눈치가 꽤나 따가웠다. 오랜만에 맛있는 한국음식과 여자 셋의 과격한 웃음과 회사 뒷이야기, 독일 생활과 연애 이야기로 우리는 아침이 온지도 몰랐다.


여기서 둘러보고 필요한 것 있으면 다 가져가.

천국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이미 한국으로 보낼 귀국 짐들은 박스에 포장까지 완료 해 둔 상태였고 그 외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나와홍차 공주는 소리 없이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챙겼다. 그릇, 커피잔, 냄비, 프라이팬, 빨래 건조대, 테이블 매트 등등 필요는 하나 막상 사려면 필요성이 쪼그라드는 것들을 실속 있게 집어 들었다. 독일어 초급자인 나는 한국어로 된 독일어 교재들까지도 ‘득템’하는 쾌거를 누렸다. 


스물두 살에 브라질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때에도, 막상 한국으로 돌아갈  때면 전기 담요부터 교재, 가재 도구 등을 남아 있는 후배와 동기들에게 나눠주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많이들 온라인 벼룩시장에 필요가 없어져 버린 짐들을 팔아 치운다는데, 그래도 이런 모습이 나름 한국 사람들의 정이자 짐을 줄이는 생활 센스이지 싶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용품을 저렴하게 구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독일에 있는 교포와 유학생들의 커뮤니티인 <베를린리포트(http://www.berlinreport.com)>의 벼룩시장 코너에 가전 제품부터 정기 교통권, 자전거 등 다양한 제품을 생각지도 못했던 가격에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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